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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9 :: 2025.04.30(수) 아 8:5-14
아 8:5-14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술람미 여인이. 아가서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리라"
이것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들은 자기의 몸과 마음에. 서로를 새기길 원하였다.
어느 누구도 우리 사이를 막지 않기를 바랐으며.
그렇기에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강하다고 말하였다.
오늘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고. 강렬히 하나되길 원했으며.
만약 오늘 우리를 해치고. 무너뜨리려는 자가 있다면.
여호와의 불처럼. 모든 것을 삼키고 해하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안에는.
불안함이나 두려움. 염려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라고 말하고.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사랑 안에서.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싶다는 표현이다.
신랑은 신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신부는 신랑에게. 향기로운 산의 노루처럼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데.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부끄럼도. 아무런 수치도 없었다.
창세기 3장에서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가 그 벗은 것으로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몸을 가리는 관계가 되었다면.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다"는 말처럼.
그들은. 언약적 관계 안에서. 서로의 연약함/허물을 덮어주는. 진실한 관계/친구가 된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9장 6절을 보면.
우리 주님이. 결혼에 대해서.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고 하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가 그런 것 같다.
아니. 사람만 나누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관계를 깨뜨리고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할 뿐이다.
비가 온 다음에. 땅이 굳고. 땅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찾아오는 고난이.
서로의 존재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더 귀하게 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성경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리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얼마나 그 사랑이 크고 깊은지.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그 사랑과 바꾸지 않으며.
오히려 멸시를 당하고 조롱을 당할 것이라"는 말이.
나에게 참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근데 이 사랑은 부부 관계 안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언약적 관계 안에서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실제로 로마서 8장 38절과 39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고백하지 않는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우리 주님의 사랑이시다.
주께서 당신의 생명을 주고. 우리를 사셨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을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단이 아무리 우리의 잘못을 정죄하고 참소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온전함을 얻고 자유를 얻게 되며.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또 돌볼 분이시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하며.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 57)"라고 했는데.
나는 이 말씀이.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온전히 흐르면 좋겠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가 서로를 정죄하고 비난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기"에만 바쁠 때도 더러 있고.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는데.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우리를 향해서.
주님이 오늘도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길 원하시는데.
오늘 우리 가운데. 어떤 정죄감이나 참소함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고. 기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고 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믿음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견실한 그런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주의 전을 더욱 사모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정케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평안함과 소망은.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나의 의는 이것 뿐.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의 죄를 씻기며. 우리의 죄를 정케하는 것은.
예수의 피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우리 주님을 내 인생의 구주로 삼고.
우리 주님을 내 인생의 목자로 삼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나의 죄를 씻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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