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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2.08.26 :: 2022.08.26(금) 삿 21:1-14

사 53:11-12

"고난을 당하고 난 뒤에. 그는 생명의 빛을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자기가 짊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하나님.
이 말씀의 기도가. 오늘 나의 기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께서 오늘 나의 걸음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살펴주시고 돌봐주시길. 주 앞에 간절히 간구합니다.

우리의 삶과 사역이. 주 앞에 헛되지 않길 간구하며.
주님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주님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삶을. 주께 의탁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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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1:15-25

사사기 마지막 이야기다.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와 싸운 뒤.
베냐민 지파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자.
이스라엘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과 그들을 결혼케 하였다.

길르앗 사람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길르앗 사람들을 죽이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 400명을.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강제로 결혼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수가 충분하진 않았다.
베냐민 지파 가운데. 아직 200명에겐 아내가 없었고.
이들은 어떻게 대를 잇고. 어떻게 유업을 이어야 할지.
아직 막막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제안을 한다.

"우리가. 직접. 당신들과 결혼을 시킬 수는 없으니.
당신들이. 직접. 여자들을 납치하시오.
실로가 되면. 매년 처녀들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 포도원으로 나오니.
당신들이 그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잡아서.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문제 삼지 않겠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묘안'이라 생각하였고.
이보다 더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이게 어떻게 묘안인가.

축제날. 여호와를 기뻐하기 위해. 축제에 나왔는데.
쌩판 아무 것도 모르는 외간 남자에게. 납치를 당해가는.
이 여자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딸을 잃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그 가족은 무슨 죄란 말인가.

이것이. 과연 여호와의 날. 기쁨의 축제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방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빼앗고. 약탈하던 것을.
어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방하고 흉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제 정신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다고 하지만.
그것은. 죽은 하나님. 종교적 관습/우상에 불과하였고.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다.
내가 왕이 되고. 내가 통치자가 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무법천지.
바로 그 곳이. 이스라엘 12지파의 현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 기자는. 사사 시대를 마무리 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그렇기에. 사사기 묵상을 마무리하는 내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누가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며.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케 하며.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할까?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께 겸손히 간구할 뿐이다.

주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라고 말씀하실 때.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씀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반응하면 좋겠다.

주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거룩하고. 정결하게 빚으셨던 것처럼.
주께서 오늘 우리의 삶을. 그렇게 거룩하고 정결하게 빚어주시길 소원하며.
주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증거케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길 소원한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찬양의 기도를 드린다.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를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양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를 찬양하리라.
누구도 헌신하지 않는 그곳에서. 주께 헌신하리라
누구도 증거하지 않는 그곳에서. 나 주를 증거하리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주를 예배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덮어지게 하소서.
내가 선 이 곳. 주의 거룩한 곳 되게 하소서. 주의 향기로 물들이소서"

오늘 하루.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예배자 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예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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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1:1-14

'자승자박'
이것은.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는 말이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 때문에. 스스로 옭혀 들어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뜻하는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결심/맹세가 2가지 있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나는. "우리 가운데 아무도.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말자"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든지. 미스바에 올라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죽이기로 굳게 맹세한 것"이었다.

근데. 이 모든 결정과 과정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스스로 자기 의분에 차서. 이 일을 선택하고. 또 결정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승자박' 스스로 올무를 묶고. 스스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성경이 뭐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났습니까?
오늘 한 지파가. 끝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엄밀히/냉정히 말해서. 이게 어찌 하나님 잘못이란 말인가.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와. 피가 터지도록 싸웠고.
그들이. 베냐민 지파와 연을 끊고.
이 사람들과는 절대로 혼을 맺지 않겠다고 해 놓고서는.
왜 이제와서 하나님을 들먹거리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정말 안타깝고. 그들을 돕고 싶다면.
스스로 약속/맹세를 철회하고.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돕고 섬기면 될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으면서. 그냥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참 이기적이고. 어리석게 느껴진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자기들만의 꼼수/해법을 모색하려 한다.
그중에 하나가 어떤 거냐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강제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2번재 맹세가 무엇인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어느 누구든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죽이고. 몰아내는 것이었다."

참 살벌하지 않은가.
무슨 맹세를 이렇게 살벌하고. 냉엄하게 한다는 말인가.

근데. 어느날. 미스바에 올라오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보니.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 있는 한 사람이 이런 제안을 낸다.
"우리 길르앗 사람들을 다 죽입시다.
그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난 다음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처녀들을. 베냐민 지파 남자들에게 넘깁시다.
그러면.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서원한 맹세들을 모두 지킬 수 있고.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대를 잇고. 그들을 존속시킬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방법입니까?"

이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쾌재를 불렀고.
"정말 똑똑하다"며. "정말 묘수"라며.
이런 생각과 제안을 한 사람을 칭찬하고 또 격려하였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게 정말 묘수인가? 이게 정말 지혜로운 결정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며.
이게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란 말인가.

오히려. 그들은. 이 선택과 결단을 통해.
더 깊은 수렁과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악수가 악수를 낳는 것처럼.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욱 깊은 영적 침체와 어두움 가운데.
빠져들고 젖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은.
정말. 어리석은/우둔한 자의 모습과 같다.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믿음이 좋고.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들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이 얼마나 깊은지.

자기들이 믿고 있는 신념과.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지.

자기들은 희생하고. 책임지고. 댓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그들을 죽음 가운데 몰아넣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할 뿐이다.

지혜 없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우리 인생 가운데.
주께서 우리의 유한함과 미련함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오직 우리가 주님 앞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런 우리가 되고. 그런 주의 백성되길 사모한다.

그래서. '자승자박'.
우리가 만들어 놓은 스스로의 올무와 함정 속에서.
우리 인생이 헛바퀴 돌고. 헛수고 하지 않으면 좋겠고.

오직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자유롭고. 기쁘게 날아드는.
그런 우리 인생되게 해주시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은혜와 소망 더하여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먼저 그 나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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