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1:1-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삿 21:12)“
베냐민 지파가 몰살 위기에 놓이자, 그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스라엘이 몰락할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의 방법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그들에게 희생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학살하고, 거기 있는 여자들을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강제로 결혼시키려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한 지파의 몰살을 막기 위해 다른 지파를 학살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입니다. 지금 눈 앞에 주어진 카드빚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카드로 그 빚을 돌려막기 하고 있고, 그렇게 이스라엘은 마구잡이로, 막가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의 모습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12절)” 이것은 이스라엘 안에 있는 그들의 불의와 세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곳은 분명 여호와의 언약궤가 거하고 있는 ‘성소 실로’이지만, 주님은 그 땅을 가리켜 ‘거룩한 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땅은 ‘가나안 족속, 가나안 사람들이 사는 가나안 땅’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생각과 말, 행동과 문화 속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습관과 세속적 가치가 그대로 물들어 있었고, 그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가나안 사람들, 가나안 땅의 족속들’인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이와 같은 모습은 없을까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가나안 족속과 같은 삶, 가나안 백성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만약 오늘 우리의 모습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복하며 엎드리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처참한지 우리는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고, 그런 우리의 인생을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망하지 않고,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그제서야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를 주의 자비로 품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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