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4:1-20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은. 한결같이 이상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왼손잡이 에훗은. 그 당시 신의 진노를 받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되었고.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
자기 스스로 왕이 되고. 자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였습니다.
입다는 그 당시 기생의 아들로서. 사회적 천대와 멸시를 받던 사람이었고.
그는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잘못된 서원을 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사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사들이.
저마다의 결격 사유와 모난 부분들을 안고 있었는데…
그 중에 최고봉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사 삼손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사 삼손이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딤나에 데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 가운데 한 명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웃긴 일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백성들과 어울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한 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선 하는 말이. 부모님께 가서. “내가 이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를 아내로 삼겠다”고 말하는데.
이 일로 인해 삼손의 부모님은. 참으로 황당한 표정을 짓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토록 많은 주의 자녀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이방 사람에게 가서. 그를 아내로 취하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삼손을 말리고. 그를 꾸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자기 결정을 고수하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3절)”라고 하는데…
삼손에게 있어. 이 일을 결정하는 모든 기준은. 오로지 ‘자기’일 뿐입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면. 언제든지 그 여자를 취할 수 있는 것이며.
“내가” 이 일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면.
어느 누구든지 나를 막을 수 없고. 나를 거스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당신의 백성이.
죄를 범하고. 주를 떠나는 일에 제일 먼저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두번째 이야기는.
나실인으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어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로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삼손이 블레셋 사람의 땅 딤나에 이르렀을 때에…
사자가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으르릉거리는 것을 보게 되는데..
삼손을 이 일을 보고. 그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 손쉽게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맞이하려고 다시 딤나를 찾았을 때에…
사자의 죽은 몸에서. 꿀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삼손은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된다’는 나실인의 규정을 무시하고.
그 사자를 찾아. 자기 좋은 대로 꿀을 먹었습니다.
그리고선. 그 꿀을 부모님에게 가져다 드렸는데…
이것은 나실인으로서의 규약을 삼손이 어겼을 뿐만 아니라…
그의 부모 또한.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레위기의 율법 말씀 또한 어기게 된 것입니다.
삼손이 자기 혼자 죄를 짓고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부모를. 그들도 알지 못한체. 죄의 늪으로 심각한 삶의 위기로 끌어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삼손은 그 꿀을 빌미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삼손의 오만방자하고 불손한 태도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폭주하게 되었고.
자기 마음대로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그들을 제거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삼손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한마리의 고삐 풀린 황소가.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고 있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삼손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 저와 우리 공동체가.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인생이. 삼손과 같은. 막장의 길을 걸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주께서 삼손의 인생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은혜를 베푸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대로 짓밟고. 자기의 삶을. 나름대로 합리화 하는.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인생을 정직히 돌아보며.
주를 따르고. 주를 경배하는. 그런 거룩한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혹시라도 오늘 우리의 인생이. 삼손과 같이 무너지고 깨어진 사람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의 모습을 본받아. 하나님 앞에 정직히. 더욱 담대히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삼손의 이렇게 깨어지고 모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당신의 역사를 이어가셨던 것처럼.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도. 나의 약함과 나의 결핍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우리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시며. 주의 역사를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의 시선을 주목하면 좋겠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샬롬이 임하며.
이 땅 가운데 주의 나라가 펼쳐지며. 이 땅 가운데 주의 역사가 이뤄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저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께서 이와 같은 은혜/복 더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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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삿 14:3)“
삼손은 한마디로 ‘문제아’입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나실인으로 부름받았지만, 그의 삶에는 하나님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삼손은 성경에 처음으로 등장하자마자 이방 여자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데, 그 결과는 그곳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부모님이 손사레를 치며 그를 말리자 삼손은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이것은 부모님을 향한 정중한 부탁이 아닙니다. 부모님을 향한 그의 명령입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겠다는데 니가 뭔데 내 앞 길을 가로막고 있냐”며 화를 내고 성질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그의 부모도 어쩔 수 없이 삼손의 얘기를 듣게 됩니다. 왜냐하면 삼손의 고집이 너무 세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이야기를 듣지 않다가 그들도 어떤 봉변을 당할지 그들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아이를 부모의 손이 그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삼손의 삶을 보는데 손가락질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아니, 무슨 이런 사람이 사사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내 그 손가락이 저를 향해 구부러집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듭니다. “나는 삼손과 무엇하나 다른가? 나는 삼손과 과연 무엇하나 다른가? 어쩌면 나도 삼손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 아닌가?”
그리고 이 질문 앞에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삼손의 이런 깨어진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모습과 오늘 우리의 모습이 별반 다를 바 없고, 이기적이고 깨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늘 우리 안에 있는 동일한 본성입니다. 그래서 삼손을 볼 때 처음에는 손가락질하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으로 삼손을 보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을 보며 불쌍히 여기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오늘 그의 모습이 오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없이는 하루도/한치도 살 수 없는 우리 인생 가운데, 주께서 당신의 은혜와 자비 베풀어 주시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살며 주님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자비, 이와 같은 은혜 베풀어 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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