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9:1-10

 

존 스토트 목사님이 쓰신 책 가운데. "제자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원제를 보면. “The Radical Disciple / 급진적 제자"라고 되어 있는데.
존 스토트가 이와 같은 제목을 단 까닭은. 우리의 부르심이 ‘급진적’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느긋하게 안주하는 삶을 살아선 안 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급진적으로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합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12장에 기록된. 유월절 규례가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1절을 보면. 주께서 유월절 규례 음식을 먹을 때에…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는데…

이와 같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떠나 길을 떠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언제 어디서 임할지 알지 못하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길을 나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급히> 음식을 먹고. <급히>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롯이 소돔성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께서 천사를 통해.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씀을 롯에게 전하시는데.
이때 롯에게 전한 이야기도. “너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만약 밍기적거리고. 뒤를 돌아보다가는. 너희가 큰 화를 당할 것이며.
그렇기에 너희는.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는. 차일피일 뒤로 미룰 일이 하나도 없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지금 당장 이 곳을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이. 생명 가운데 거하고.
비로소 사망의 늪을 떠나 자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것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레위 사람인데.
그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늑장을 부리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는 삶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어떤 여자/첩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2절에서 그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 넉 달 동안 거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개역개정 판에서는. 이 일이 여자의 행음으로 인해 벌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원문의 정확한 표현을 보면.
“남자의 어떤 잘못 때문에. 여자가 고향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을 보면.
“그러나 무슨 일로 화가 난 그 여자는. 그를 떠나 유다 땅의 베들레헴에 있는 자기 친정 집으로 돌아가서.
넉 달 동안이나 머물러 있었다(새번역, 삿 19:2)”라고 하는데…

남자는 자기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찾으러 집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마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행동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넉 달 동안. 아내를 데리러 가는 것을 계속 밍기적거리게 되는데…
그러다가 네 달이 지난 시점에. 겨우 겨우 아내를 데리러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남편의 모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장면에서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이 사람이 아내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의 아버지 장인이. 그로 하여금. 그의 집에 계속 머물도록 하는 장면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는 거기서 먹고 마시는 일에 빠져서. 삼 일 동안 그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고. 자기의 잘못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가 레위의 직분을 감당해야 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나흘 째 되는 날 아침에. 이제서야/그제서야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는 장인의 청을 이기지 못하여. 네째 날에도 그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섯째날을 맞이하고. 그날 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런 레위의 모습 속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지금 당장 반응하는 법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뒤로 미루려 하였고.
자기의 삶에.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와 핑계. 변경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데.
주님은 그런 레위의 삶을 보시며. 안타까워 하시고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지금 당장. 바로>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우리는 삶의 여러 이유와 핑계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지금 당장> 우리의 잘못된 삶들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말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현실에 타협하며. 현실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을 청산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루 이틀. 차일 피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회피’하며. ‘변명’으로 일삼는 우리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정직히 반응하며.
감사함으로 또 기쁨으로 반응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인생이. ‘회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해피’한 인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
오늘 주께서 저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복 더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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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9:1-10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그가 삼 일 동안 그와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삿 19:4)“

 

오늘 본문을 보면 ‘레위 지파’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아내 한명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베들레헴 지역 사람을 첩으로 들였고, 그는 어떤 연유에선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첩을 화나게 하여 그가 집으로 돌아갈 빌미를 제공하였습니다. 4개월이 지나도록 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두 사람 사이는 깊은 앙금이 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시점에, 그제서야 아내를 데리러 베들레헴에 내려가는데… 이 과정에서는 그는 계속해서 밍기적거리고 꾸물거리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는데, 그는 삼일 동안 그의 장인과 함께 머물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탐닉하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장인이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붙잡자 못 이기는 척 그의 요청을 수락하였습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지금 당장’ 자기 눈 앞에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를 듣지도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합니다. 아니, 못 듣는 것이 아니라 안 듣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이 행동을 하게 되면, 그의 삶은 너무나 초라해지고 재미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눈 앞에 주어진 즐거움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내가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주의 길을 걸어갈 수 있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당신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결코 ‘제자다운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자’의 탈을 쓴 ‘늑대’였고, 그의 삶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방치된 삶, 녹이 든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레위의 모습을 보며 주님이 어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그의 모습을 보시며 슬퍼하고 한탄할 따름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 눈 앞에 선명하게 주어져 있는데, 우리는 그 부르심을 모른 척 하며 밍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선명히 말씀하고 계시는데, 오늘 우리는 그 음성을 듣고도 모른 척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인생이 ‘레위인’처럼 회피하고 도망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감사함으로 반응하며 ‘기쁨(happy)’으로 응답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그분의 삶의 열매가 온전히 맺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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