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22-36

여호수아 23장을 보면.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유업으로 나눠준 다음에.
“그 땅을 점령하고. 다스리라”고 하였는데. 이에 그들은. 철떡같이 ‘아멘’이라고 답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며.
만약 우리가 그들을 몰아내지 않고. 화친을 맺는다면.
주께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벌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24장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세겜 언약’ 맺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이 이 약속을 새카맣게 잊어버립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2절에서 25절을 보면. 요셉 가문이 벧엘을 치러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은 그 성읍 사람들과 더불어. 화친을 맺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에게. 성읍의 입구를 알려주면. 우리가 당신을 선대하리라”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스스로 어긴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먼저. 화친을 구하고. 손을 내민 것인데.
이것은 나중에 그들에게. 올무가 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26절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그들은 헷 사람들의 성읍/땅에 가서. ‘루스’라는 새로운 성을 건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과 그 죄악은. 27절 이후 말씀에서도 계속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7절 맨 마지막을 보면.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27절)”라고 하는데.
여기서. 결심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가나안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기 살기로 그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냥 적당하게 대충 오늘을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그들의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에 대해.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그들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에겐. 가나안 족속을 몰아낼. 힘과 권세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쫓아내는 것보다.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것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힘든 일을 시켜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를 따른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간적인 셈과 계산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 가운데. 역전된 현상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전에는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살았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 사이에서… 그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9절을 보면.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라고 하는데.
32절에서는.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재밌는 일이죠.
전에는 분명. 가나안 사람들이 힘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고.

34절에서 가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지에 몰리고.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과 오만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때는 잘 나가며. 자기의 힘을 보여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하나님을 등지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졌을 때에…
이제 그들이 죄의 노예가 되고. 사단의 발 아래 굴복하는 것을.
오늘 본문이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또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깊은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타협하고. 현실에 눌러 앉아서.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살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거 하나 타협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질까 싶고.
이거 하나 양보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 안일하게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처럼. “근신하고 깨어서 하나님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하며”.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처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 사로잡히지 않을 때. 우리는 얼마든지 인간의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의 길을 걸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얼마든지 거짓된 가르침에 유혹을 받으며. 거짓된 교훈에 물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주와 더불어. 주와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인데.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던 것처럼.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은혜에 붙잡혀서.
주를 바라보며. 주와 동행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헤/복 더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Feat. 하나님 말씀으로)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6.09.02(수) 삿 1:11-21  (0) 2026.09.02
2026.09.01(월) 삿 1:1-10  (0) 2026.09.01
2024.03.30(토) 사 53:11-12  (0) 2024.03.30
2022.08.27(토) 삿 21:15-25  (0) 2022.08.27
2022.08.26(금) 삿 21:1-14  (0) 2022.08.26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