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8:21-31

많은 교회에서. 다음세대 신앙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좋은 신앙을 물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들은 계속 고민하고. 또 기도합니다.

내가 만난 주님을. 우리 자녀들도… 우리 아이들도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인데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신앙은. 절대 저절로/절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실제로 사사시 18장을 보면. ‘라이스’를 점령하는 단 지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이 땅을 살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단 지파 사람들에게 주신 땅은. 가나안 지중해 연안의 평야 지대였는데…
그들은 이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땅을 차지하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단 지파 사람들에게 주어진 땅은.
이미 아모리 족속 사람들이. 결심하여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1장의 기록을 보면. 아모리 족속 사람들이. 단 지파 사람들을 산으로 몰아넣고.
골짜기로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로 인해 단 지파 사람들은. 새로운 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그들이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고” 있는데…
이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단 지파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뒤로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때.
그들 가운데 큰 화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단 지파 사람들의 어처구니 없음은. 30절 이하의 말씀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집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새로운 신상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
이 때 그들의 제사장이 된 것은.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죠.
모세는. 하나님의 인도와 부르심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는데.
그의 손자였던 요나단이. 이제는 우상 숭배의 앞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한순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라고 하는데.
그들은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돌이키고 성찰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냥 자기하고 싶은대로. 끝까지 살아갈 뿐입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시고. 주께서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셨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이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단순히 단 지파가 타락한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다른 세대가 일어났음을 뜻하는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여러 통로로 들어왔지만.
이것이 그들의 삶에. 실제가 되고. 구체적인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은 잘못.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선물로 주기 원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절로/저절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개인적으로/인격적으로 고백해야 하며.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그들은 다른 세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같은 세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저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를 죽였던 것처럼.
오늘 저와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일들이 자행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우리 가운데 주의 역사가 펼쳐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환상 가운데 주를 바라보며.
14만 4천명의 주의 백성들이 함께 주를 찬양하였던 것처럼.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일들이 나타나며.
모든 백성이 주를 맞이하며. 주를 경배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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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8:21-31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삿 18:30)“

 

단 지파 사람들이 새로운 땅을 찾지합니다. 그곳 이름은 ‘라이스’인데, 단 지파 사람들은 그곳을 점령한 다음, 그 곳 이름을 ‘단’으로 바꿉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것인데요.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전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단 지파에게 주신 땅은 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땅은 아모리 족속 사람들에게 빼앗겼고(삿 1장), 단 지파 사람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그곳을 점령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피를 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근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단 지파의 이상한 행동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실제로 앞에서 단 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제사장과 그곳에 있던 에봇을 가지고 도망쳤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자기를 위한 새로운 신상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새로운 사람을 세웁니다. 근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 모세의 손자 요나단입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지요. 모세의 때에 그렇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모세의 손자 요나단이 이 일에 직접 나서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들 가운데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일이 벌써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이 땅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날 이 땅 가운데 거센 세속의 물결이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도 하고, 오늘날 이 땅 가운데 풍요와 물질의 행복이 이미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우리 인생의 기쁨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다른 세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있지만, 실제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모습이 단 지파 사람들과 그리고 모세의 손자 요나단과 어찌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이야기고, 성경의 아픔은 오늘 우리의 아픔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눈물로 탄식으로 간구할 따름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인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분명히/반듯이 새겨지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에 대해서 귀로만 말로만 전해듣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반드시 주를 경험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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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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