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9:11-21

 

영화 오디세이를 보면. ‘제우스의 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나그네가 찾아오면. 신분이 누구인지 묻기 전에.
먼저 갈아입을 옷을 주고. 씻기고. 그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이 이와 같이 한 까닭은. “신이 변장한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그네를 향해 환대하고. 극진히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우스의 법’ 나그네를 향한 그들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고대 근동 지역에서 흥행하던 법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실제로 출애굽기 22장 21절을 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라고 하는데.
주님은 ‘고아와 나그네’ 같이.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이방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지낸다면…
그들은 자기 목숨을 스스로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님은 그들을 돌보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길 것을 명하였습니다.
이것이 모세오경에 기록된. 율법의 기본적인 사항이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것과 정 반대의 삶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3절 이하를 보면.
레위인과 그의 가족들이. 베냐민 지파에 속한 땅. 기브아에 이르는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
그곳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들을 맞이하거나 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를 보고도. 멀뚱멀뚱 뒤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이 사람을 도와줬다가. 자기들이 해코지를 당할까봐 그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내주고.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고.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소비했어야 하는데.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일 감당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그들을 도와준다 한들. 자기에게 돌아올 실 이익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라고 하는데.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호의를 베푸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레위인과 그의 가족을 보고. 자기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라고 이야기 합니다.

레위인과 그의 가족들이… 우리에게 먹을 음식이 충분하고…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있으니.
우리에게 다만 잠자리만 내어달라고 말할 뿐인데…
그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내 집에 들어와 편히 쉬라고만 말할 뿐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도 지금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다가. 밤 늦게/겨우겨우 집에 돌아가는 길인데…
이런 상황 속에서. 기꺼이/마음 다해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21절에서는. 이러한 나그네의 호의가. 말뿐이 아닌 실제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그들은. 이 어르신의 섬김과 사랑으로 인하여.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마치 사막 여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시원하게 목을 축였던 것처럼.
오늘 레위인과 그의 가족들이. 삭막한 세상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안에서 이와 같은 삶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 돌보며. 자기 밖에 모르는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기의 몸을 깨뜨려. 우리의 몸을 의의 도구로. 평화의 도구”로 드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자기의 것을 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자기의 것을 내어주는 것”인데.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하나님 안에서 참된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약 1:27)”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의 안에서.
주의 사랑을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실질적으로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인생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전해지며.
이 땅 가운데 주의 향기가 꽃을 피우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복 더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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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19:11-21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삿 19:15)“

 

레위인과 그의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늦은 시간 길을 떠났기에 그들은 중간에 유숙할 곳을 찾는데, 그러다가 그들은 기브아라는 도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 베냐민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한순간에 완전히 깨어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어느 누구도 그를 환대하거나 돌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 모세의 율법에는 ‘나그네를 환대하고 그를 극진히 대접하라”고 하였건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나그네를 돌보거나 섬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태를 반영하는 것인데, 그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도 않았고, 율법의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그들을 극진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섬깁니다. 그 사람은 이름 없는 한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사는 땅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의 삶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녁 때에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는 길이었고, 그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곳 땅에서 나그네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또 다른 나그네를 섬깁니다. 자기의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것을 아까워하거나 탐내지 아니하고, 오직 사랑과 정성으로 극진히 그들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누구의 모습과 비슷한가요?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는 나그네들을 보면서 그냥 쉽게 지나치고 나 몰라라 하는 베냐민 지파와 같은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이름 없는 한 노인처럼, 우리에게 가진 것이 충분치 않다 하더라도…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있는 소중한 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베푸는 삶을 살고 있나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네게 있는 것으로, 그들을 돕고 사랑하며 섬기라’고 이야기 하는데… 바라기는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나밖에 모르는 ‘각자도생’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복된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마중물’로 쓰임 받음에 따라,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전파되며, 그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선포되는 복된 하루, 복된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복 더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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