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3:1-18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1년 6개월동안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회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린도 지역에는. 새로운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우상의 소굴이요. 인간의 철학으로 가득했던 도시에.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파되고. 주의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사도 바울을 공격하며.
그의 사도권에 대해서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데. 크게 다섯 가지의 이유로 정리됩니다.

1) 먼저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을 할 때에.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그 다음에 우리 주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그가 사도가 될 수 있는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의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공적인 추천서/라이센스가 없다고 말합니다.
3)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그의 글과 달리. 그의 말은 형편이 없었다고 말하고.
4)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교회의 공식적인 후원과 재정을 받지 아니하고.
그가 텐트 메이커로. 자비량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만약 그가. 교회의 공식적인 파송/보냄을 받았다면.
그가 돈을 받고 사역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거리낌이 없었을 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육체의 고난과. 그의 질병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하는데.
만약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셨다면. 그에게 어떻게 이런 고난/아픔을 줄 수 있겠냐고.
그에게 문제제기 하고. 그를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1년 6개월 동안. 사랑하며 수고하고. 섬긴 교회로부터.
못된 말을 들으며. 그의 사도권에 대해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사도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지혜를 자랑하는. 미천한 사람. 미개한 사람이라고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먼저는. 나의 부르심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그분의 뜻에 따라 시작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두번째는 그의 부르심이. 모든 교회 성도들로부터. 이미 확증되고. 검증받은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고린도후서 1장 1절과 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편지하노라)”라고 되어 있는데.
사도는 그의 부르심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6절에서는.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라고 말하는데.
사도 바울은 이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께 부름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의 첫째 요건인. <내적인 부르심>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심과 소망이 그 안에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두번째 부르심 <외적인 부르심>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외적인 부르심이란.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을 통해. 회심하고 변화된 열매가 그의 삶에 나타나는 것인데.
이에 사도 바울은. 그 열매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너희가 어떻게 삶의 변화를 겪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애써 추천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추천서요.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기를 향한. 일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공격 앞에서.
결코 낙심하거나.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강력한 소망과 부르심의 뜻이 있기 때문이며.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검증 받고. 또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사도는 이 부르심에 대한 확신과 소망으로. 담대히 또 강건히 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 두 가지가. 함께 필요합니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오늘 우리의 삶을 향해서도.
공격하고 우리를 못 살게 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럴 때면 우리의 마음도 쉽게 상하여. 뒤로 물러서거나. 후퇴하고 싶을 때가 더러 있는데…
그럴 때 우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운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뜻을 듣는 데 열중해야 할 것이며.
오늘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열매. 그분의 삶의 흔적이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내적인 확신과 자기 만족에 갇혀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잘못 판단하고. 자기 생각 속에 갇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로부터. 우리의 은사를 확인받고. 점검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부르심이. 내적인 확신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열매. 외적인 부르심을 함께 확인하며 나아갈 때.
오늘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구원을 얻고. 흔들리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내적인 부르심”과 “외적인 부르심”을 함께 확인하고. 주님 안에 담대히/견고히 서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안에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 가운데. 주께서 당신의 부르심과 소망을 더해 주셔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안에 굳게 서길 원하며.
오늘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많은 이들을 변화시키고. 그들로부터 공적인 인정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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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3:1-18

“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누군가 사역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저는 두 가지를 꼭 물어봅니다. 하나는 ‘내적인 부르심’이 있냐는 것이며, 두번째는 ‘외적인 부르심’이 있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적인 부르심’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열심과 열정이 있냐는 것이고, ‘외적인 부르심’이란 공동체의 칭찬과 인정이 있냐는 것입니다.

만약 ‘내적인 부르심’은 있지만 ‘외적인 부르심’이 없다면, 그는 열심히 사역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걱정거리와 지탄의 대상이 되게 될 것이며, 만약 ‘외적인 부르심’은 있지만 ‘내적인 부르심’이 없다면, 그의 사역은 뜨뜨미지근한 허공을 치는 사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주의 일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이 두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과 사역은 균형을 잃은 수레바퀴처럼, 그 자리를 계속 답습하거나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은 이 두 가지가 함께 균형을 이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따라” 사도가 되었으며, 그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마음의 심령과 뜨거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그를 핍박하고 조롱할 때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 가운데 뜨거운 불/원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길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외적인 부르심/삶과 사역의 열매’ 또한 충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주의 교회가 세워졌고, 그의 가르침과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을 계속해서 지지하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여러 권의 성경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에 어찌 열매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추천서를 받아서 힘있게 능력있게 사역을 감당했을 뿐 아니라, 많은 교회 성도들이 그를 영적인 아비로 따르며 그를 통해 주의 몸된 교회를 세워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추천서)라.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끊임없는 열심과 열정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교회가 멈추지 않고 활활 타오르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 가운데 칭찬과 인정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께서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면 좋겠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걸음이 사람들의 걱정거리, 염려,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또 지체들 앞에 아름다운 향기가 되면 좋겠는데…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교회 가운데 구원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교회 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저와 우리 공동체가 ‘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으로 충만한,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하루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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