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삿 11:3)”

입다는 공동체 안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가족 공동체 안에서 추방을 당하였고,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조롱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게 되는데, 그의 삶은 초라하고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입다를 통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그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버린 돌’처럼 여겨졌지만, 하나님은 모나고 깨어진 그의 인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입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옆에 모여 있는 입다의 친구들 또한 그렇습니다. 실제로 사사기 11장 3절을 보면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라고 하는데, 여기 나오는 ‘잡류’는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면? 시정잡배, 건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은 하나도 환영받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다 저런 것이 이 땅에 태어났나?” 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저놈의 새끼들은 없어지는 게 나아! 사라지는 게 나아!”라고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런 입다와 잡류들을 통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입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사무엘상 22장 1절과 2절을 보면 다윗 곁에 모여든 사람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세상의 원칙과 기준에서 보면 하나도/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통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진 자들의 세상, 메이저리그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볼품도 없는 마이너리그/주변부의 사람들을 통해서도 이뤄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시샘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생을 통해 당신의 나라를 이뤄가실 것인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께서 우리의 인생을 통해 어떤 일을 행하실지” 꿈꾸며 기대하며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마음 깊이 붙잡길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당신의 나라를 갈망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진 것임을, 믿고 바라며 소망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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