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6:1-14

우리는 지난 시간. 딤나로 내려가 블레셋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삼손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과 혼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게 되었고.
나실인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과 규례를 아주 사소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삼손의 행동을 보면. ‘경거망동’이라는 한자어가 생각이 나는데…
그만큼 삼손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경솔히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삼손의 그러한 모습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라고 하는데…
삼손은 오늘도 이방 사람을 찾아. 음란하고 불경건한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이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없으니.
아무도 자기를 찾지 않는. 먼 곳 이방 땅에서.
불의한 행동을 하고. 불의한 모습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삼손이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우리가 잘 아는 ‘들릴라’인데…
삼손은 그와 함께 관계를 맺으며. 그의 치마폭에 폭 놀아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삼손의 행동이.
자기의 힘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경계를 잃어가고. 분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가사 사람들이 삼손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와. 그를 죽이기 위해 매복하고 있는데…
만약 삼손이 제정신이었다면. 그는 다시는 이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사자의 입에 목을 넣기를. 즐기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자기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히죽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잡기 위해 잠궈놓았던.
문설주와 문 빗장을 뺏서.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6절 이하의 말씀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 죽이기 위해.
‘들릴라’를 매수하였다는 사실을 앎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들릴라와 놀아나고 있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의 힘의 비밀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그를 이용하고. 군대가 매복하였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죄를 행하고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적인 분별력과 지각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삼손은 자기의 주먹만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바로 지금 자기 눈 앞에 주어져 있는데.
삼손은 어떠한 영적인 긴장도 없이. 어떠한 영적인 분별력도 없이.
그렇게 앞을 보지 못하고. 오늘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어떤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를 갖고 있을까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일순간에… 한순간에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 거하다 보면… 우리도 알게 모르게 그 어두움에 점차 물들게 되는데…
그 어두움 가운데 벗어나는 가장 좋은 비결은.
오늘 내가 있는 위치와 현주소를 하나님 앞에 바르게 분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세상의 거친 파도와 물결이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모습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살펴보아야 하고.
그렇게 오늘 우리의 모습이. 죄와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친구가 되며. 그와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거친 파도와 물결 앞에서. 이것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벽이라며…
타협하며 현실 가운데 길들여져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우리의 심령이 물들어가야 하며.
그렇게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 견고해져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의 거친 파도에 떠내려 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데…
바라기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빈 들에서 자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심령이 강하여졌던 것처럼(눅 1:80).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이 견고해지는. 그런 복된 하루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의 인생이 주님 오심을 바라보며. 한 분 하나님을 섬기며. 한 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복 더해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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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삿 16:4)“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삼손의 모습을 보면, 두 한자가 생각납니다. 하나는 ‘경거망동’ 한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오만방자’ 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는 어떤 일을 할 때 깊이 생각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욕정을 따라 살아갑니다. 딤나에 있던 여자가 좋아서 그 여자를 만나러 갔고, 오늘은 가사에 있는 기생이 좋아서 또 그 여자를 만나러 가고, 이제는 우리가 잘 아는 ‘들릴라’를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와 같은 행동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거짓된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경거망동’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만방자’ 하기까지 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삼손은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기는데, 그는 이 시간을 통해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자기 힘만 믿고 살아갈 뿐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애를 쓰고 나를 막아선다 하더라도, 너희는 내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그렇게 그는 자기 힘만 믿고 오늘도 거짓말을 하며, 여자의 치마폭에 놀아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삼손의 모습을 보며 우리 주님이 어찌 그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고삐 풀린 망아지, 불나방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겐 삼손과 같이 이와 같은 죄와 허물은 없을까요?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분별력과 지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심사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업신여기며 경히 여기고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라기는 오늘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여, 삼손과 같은 그런 잘못을 범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주께서 우리 가운데 마음의 가난함과 겸손함을 허락해 주셔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받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직 우리의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법과 주의 생명이 흘러넘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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