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4:1-18

하나님을 섬기다 보면. 종종 마음의 시험/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왜곡되어 전달될 때도 있고.
하지도 않은 일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오해를 받고. 곡해 받을 때도 있습니다.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길 원하지만.
때때로 양들이 우리의 음성을 듣지 않고. 우리를 들이받을 때도 있고.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 낙담되고 위축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시각각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일희일비하며. 우리의 감정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때때로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낙심되고. 낙담되는 마음이 찾아올 때.
우리의 인생은. 허무함과 절망감 가운데 사로잡힐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인생의 좋은 믿음의 스승/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인생 가운데. 믿음의 시련/고난이 많았기 때문인데요.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권면을 들으며.
이런 때에 우리가 어떻게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기 원합니다.


먼저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첫번째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기신 이가 누구인지. 분명히/반드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라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직분을 맡기셨음을 반드시/분명히 기억하였습니다.
주께서 지난 시간 동안. 한 번도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거절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하나님 안에서. 그분을 거절하지 않고. 그를 떠나지 않기를 바랐으며…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분의 자비 안에 거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자비하심을 입지 않고서는.
도저히 형제자매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당신을 때리고 욕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긍휼의 눈빛으로/자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던 것처럼.
오늘 사도 바울도 하나님 안에서.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가길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두번째로 요청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가치가. 결코 달라지지 않음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가 가장 많이 함정에 빠지는 것이 이것인데요.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 때문에. 하나님 나라 복음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역에 있어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결실을 맺으면.
하나님 나라가 지금 당장 이 곳에 임할 거라 생각하고.
우리가 사역에 있어서 때론 부침을 겪고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 나라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저 멀리 있는 외딴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로. 자기의 삶을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는데…
하나님 나라 복음은. 우리의 사역의 어떠함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그 씨앗이 자라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그분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그 씨앗이 자랄 때에.
사단이 그 씨앗을 빼앗고.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고 혼잡하게 할 때가 있는데…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것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 나라/그분의 영광을 주목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는데…
우리는 질그릇처럼. 미천하고. 부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능력은. 아무런 훼손도. 아무런 쇠함도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의 인생길 가운데. 낙심하거나 낙담하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
때때로 사망이 찾아오는 것 같고. 때때로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펼쳐지는. 그분의 은혜의 현장임을 사도 바울은 기억하고 있고.
비록 오늘 우리의 인생이. 쇠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결코 쇠함이 없으며. 하나님 나라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영원할 것을.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16절과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우리가 지금 겪는 고난은. 가볍고 일시적인 것이지만.
마지막 날에. 그날에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은. 영원하며. 값진 보화와 같은 것임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고백하며.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 때때로 어려움이 찾아오고 낙심이 찾아올 때에.
오늘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기신 이가 누구신지.
우리가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며. 분명히 인식하길 원하며.

오늘 우리의 성패와 오늘 우리의 어떠함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진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는 영원하며. 그 나라는 쇠하지 않는 것임을.
우리의 삶을 다해 고백하며.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저의 삶 되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복 더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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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1-18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사역을 하다보면 때때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왜곡되어 전달될 때도 있고,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오해를 받고 원망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양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우리를 들이받을 때도 있고, 오랫동안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도 열매가 맺히지 않고 결실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인간적으로 낙심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내가 이 일에 있어서 과연 적합하고 필요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이 들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첫번째는 ‘오늘 우리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고, 두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우리의 사역의 어떠함으로 그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7절이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하는데… 여기서 질그릇에 보배를 담아주신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보배를 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배를 질그릇과 같은 우리의 인생에 부어주셨고, 우리는 그 보배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고 존귀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그 부르심의 영광을 따라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사도는 7절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우리의 어떠함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찬양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그 가치는 우리 사역의 어떠함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지 않으며, 그는 존귀하신 하나님/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착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릇의 가치가 높아져야 보배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보배가 영광스럽기에 그 그릇 또한 영광스럽게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이 두 가지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가 사방에서 욱여쌈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릴 때,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영광을 보며, 주의 아름다운 자녀로, 주의 존귀한 자녀로 자라며 열매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 저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이가 누구입니까? 오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이가 누구입니까? 오늘 하루 저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그분의 아름다움만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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