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4:11-24

 

여선지자 드보라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솔 왕 야빈으로부터 학대를 당하였습니다.
하솔 왕 야빈은 철 병거 900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을 점령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 당하며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사사기 5장 6절이 그날의 풍경을 잘 보여줍니다. 실제로 사사기 5장 6절을 보면.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는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삿 5:6)”라고 하는데…
그들은 하솔 왕 야빈이 두려워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곳에서. 행동하고 움직이곤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솔 왕 야빈의 눈에 띄는 순간.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억압당하고 고통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솔 왕 야빈을 피해… 숨어지내곤 했었는데…
그 당시 이런 움직인에 반해… 새로운 길을 도모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그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헤벨>인데…
그는 하솔 왕 야빈과 손잡고. 그와 화친 맺기를 즐거워하였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그 모습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 1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이르러(삿 4:11)”라고 하는데..
헤벨은 자기 족속을 떠나. 먼 곳으로 혼자 길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겐 족속 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아랏 남방 유다 황무지였었는데…
그는 자기 족속을 떠나. 이스라엘 북부 게데스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이스라엘의 최전방으로. 하솔 왕 야빈이 거하던 곳과 가까운 곳인데…
그는 하솔 왕 야빈과 정치적 동맹을 맺기 위해. 먼 길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에 살면서. 고통 받으며. 학대 가운데 사느니…
차라리 하솔 왕 야빈과 정치적 관계/동맹을 맺으며. 그와 더불어 사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고.
판단하고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과 18절을 보면…
하솔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자기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겐 사람 헤벨의 집에 도망치게 되는데…
이것이 그 당시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예기치 못한 움직임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헤벨의 아내였던 야엘이. 시스라의 목숨을 노리고. 그를 죽이게 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는 시스라가 잠든 사이에. 말뚝을 가지고 와서. 그 말뚝을 그의 머리에 박았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야엘이 자기 스스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 것인데…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 이런 생각/질문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야엘은 왜 시스라의 목숨을 노리고. 그를 죽이게 된 것일까?
분명 그의 남편이었던 헤벨은. 하솔 왕 야빈과 화친을 맺고. 정치적 동맹/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왜 야엘은 그의 목숨을 노리고. 그를 죽이게 된 것일까?

만약. 이 일이 실패로 그치게 된다면. 그는 남편 헤벨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하솔 왕 야빈으로부터도. 목숨을 건지기가 쉽지 않을텐데…
왜 야엘은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을까?
성경을 보면서. 이런 질문들이 제 마음에 남겨졌는데…
말씀을 묵상하며 깨달은 것은. 야엘이 하나님 앞에 비겁하게 자기의 목숨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정정당당히. 거룩히 살아가길 바랐기 때문에…
그래서 야엘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을까요?
야엘이 자기 형제/족속을 떠나 먼 길을 걸어가게 될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을까요?

야엘이 하솔 왕 야빈의 발 앞에 엎드려. 그에게 조공을 바치고. 그의 종노릇을 할 때에…
그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이 시간이 비극적으로 느껴졌을까요?
자기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이스라엘 내부 정보를 그들에게 빼돌리고…
자기의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하솔 왕 야빈의 앞잡이가 되어서. 그의 식민지 노릇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에게 참 비극적이고 수치스럽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엘은 자기 남편 헤벨이 없을 때에… 하나님 앞에 정직히 이 길을 도모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가… 하솔 왕 야빈의 앞잡이가 되어서… 비극적인 여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정당당하게. 진실하게. 또 거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이 시간을 결단을 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엘은 시스라의 머리에 말뚝을 박으며. 그를 죽이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시스라를 죽이고. 그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비참했던 과거와 과감히 단절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종으로. 하나님 앞에 진실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받으시고. 그의 이름을 온 천하 가운데 높이 드시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 야엘을 둘러싼. 성경 기자의 평가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모습으로 서기 원합니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도 현실과 타협하며. 현실 가운데 적당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헤벨의 모습처럼 자기 족속을 떠나 먼 곳에 거하고 싶을 때도 있고.
헤벨의 모습처럼.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고 싶은 때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원하는 것은. 분명한 삶의 태도. 분명한 삶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며.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로서.
주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기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며.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저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분명한 의사결정. 분명한 길을 걷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저와 우리 공동체가. 야엘과 같은 믿음. 야엘과 같은 삶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사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6.09.08(화) 삿 4:1-10  (1) 2026.09.08
2026.09.07(월) 삿 3:12-31  (0) 2026.09.07
2026.09.06(주일) 삿 3:1-11  (0) 2026.09.06
2026.09.05(토) 삿 2:11-23  (1) 2026.09.05
2026.09.04(금) 삿 2:1-10  (1) 2026.09.04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