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5:1-14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여기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두루마리가 쥐어져 있는데.
이 두루마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번째는. 두루마리 안팎으로 많은 글이 쓰여져 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 두루마리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로마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머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실제로 로마 사회 안에. 얼마나 부도덕하고 악한 일들이 많았는가.
그들은 자기의 힘과 권세를 힘입어. 수많은 사람을 짓밟고 유린하는 삶을 살아왔으며.
자기들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 황제가 가는 곳마다. 피 비린내와 폭력의 역사가 줄을 이었었고.
그 가운데는. 교회를 향한 핍박과. 고난 또한 동일하게 담겨 있었는데.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 문제가 무엇이냐면.
이 땅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인을 떼거나 열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라고 묻는데.
3절에. 이 땅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인을 떼고. 두루마리를 펼 쳐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요한 입장에선.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이제 곧 실현될 터인데…
그들의 잘못과 허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이 두루마리를 열고.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요한 입장에서는. 이 일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졌겠는가.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그 두루마리를 펴가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이것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담긴 두루마리를 바라보는.
요한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1) 주께서 로마 사회를 보시며. 그들의 폭력과 피의 역사가 너무나 지나치다 말씀하시며.
2) 주께서 그들을 향한. 심판과 진노의 잔이 가득 차 있다 말씀하시는데.
3) 그 심판이 하루하루 지연되고 멀어지는 것 같아서.
요한은 슬퍼하며. 탄식하는 가운데. 눈물로/기도로 오늘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늘로부터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슬퍼하지 말고. 울지 말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제 곧 우리 주님이. 그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치고. 주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5절)"
이것은 우리 주님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죽음 가운데 다시 살아나셨음을 뜻하는 말인데.
이제는 우리 주님이. 영광의 왕으로 오셔서.
그 두루마리를 취하고. 그 인을 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두루마리를 열지 못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우리 주님이. 그 두루마리를 열고. 왕으로 좌정하실 것이니.
슬퍼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게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라고 하는데.
요한은 이 일을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드렸다.
왜냐하면. 이제 곧. 하나님의 역사/당신의 구원 역사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악이 권세를 부리고.
지금까지 사탄이 이 땅의 왕노릇 하고 지냈다면.
이제는 주께서 모든 악의 역사를 뿌리 뽑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영광 가운데/승리 가운데 나타나실 것임을.
사도 요한이 믿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도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말한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주로 임하셨습니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에게 자유/참된 평화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제 원수는. 우리 주님의 발 아래서. 두려워 떨 일만 남았고.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온전한 구원/자유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부활의 주요. 생명의 주가 되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를 찬양합시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높이는" 그런 복된 하루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우리도 요한처럼. 탄식하며 눈물 가운데 거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의 약속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느리게 오고/더디 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절망하며. 탄식 가운데... 눈물 가운데 거닐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슬퍼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오늘 이 땅 가운데. 악의 역사가.
아직도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님이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오늘 우리 가운데. 주의 약속이. 느리게/더디 실현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은 언젠가/반드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며. 승리자로/구원자로 임하실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또 약속으로 우리 가운데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신앙 고백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잠시/일시적인 것'임을 기억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시며. 오늘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시는.
그 주님을 바라보며. 그 주님과 동행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찬양의 고백이 계속 생각나는 것 같다.
"모든 민족과 방언들 가운데. 수많은 주 백성 모였네.
주의 보혈과 그 사랑으로. 친 백성 삼으셨네.
주를 향한 감사와 찬양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네.
다만 내 소리 높여 온 맘을 다해. 찬양하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어린양.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보혈 덮으사.
모든 족속 모든 방언. 모든 백성 열방이.
모든 영광 모든 존귀 모든 찬양 주께 드리네.
어린양 피로 씻어진 우리들. 은혜로 주 앞에 서있네.
주 이름으로 자녀된 우리 겸손히 구하오니.
주의 능력 우리게 베푸사. 주를 더욱 닮게 하소서.
그때에 모든 나라 주 영광 보며 경배하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어린양.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의 보혈 덮으사.
모든 족속 모든 방언. 모든 백성 열방이.
모든 영광 모든 존귀 모든 찬양 주께 드리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우리의 승리자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모든 민족과 방언들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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