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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6-20
수련회 인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련회 주제가. "순 우리말 찾기"였는데.
인사말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12월을. 순 우리말로 하면. 이렇다고 합니다.
<매듭달>.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고. 새해를 준비하는 달."
참 이 말이 와 닿았다.
매듭달.
그렇지.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난 시간을 매듭짓 는 것.
때로는 그것이. 만족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지나온 것은. 지나온 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매듭짓고. 새해를 내다보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순례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도.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나. 함께 되새겨 본다.
우리 주님이.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나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함과 기쁨의 눈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가?
아니면.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아. 아쉬움과 탄식의 눈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가?
어떤 측면에선. 감사한 것도 참 많지만.
어떤 측면에선. 아쉽고. 후회스러운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온 것은 지나온 대로 의미가 있겠지.
때로는 내가 실수하고. 넘어진 자리에.
우리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그것을 메꾸셨을 것이며.
주님은. 우리의 삶을 받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용납하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시간을 감사함과 기쁨으로. 잘 <매듭> 짓고.
새로운 한해를. 소망과 믿음 가운데. 바라보는 것이다.
“난 왜 이것 밖에 못했을까?”
나 자신을 스스로 책망하고.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 아니라.
새해에는. 하나님 안에서. 더욱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다짐과 소망 속에서.
오늘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12월의. 순 우리말이. <매듭 달>이었다면.
1월의 순 우리말이. <해오름 달>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자연스럽다.
새해 아침에. 해가 힘차게 떠오르는면서. 대지를 환하게 밝히는 것처럼.
오늘 우리 인생도. 주님 안에서.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보내며.
우리 안에. <매듭과. 해오름>의 의미가. 함께 되살아나길 소원한다.
오늘. 내가 매듭 지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바라보아여 할 것은 무엇일까?
바라기는.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돌아봄과 내다봄의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꾸고.
우리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런 소망과 꿈을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걱정 말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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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1-15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단지. 여자들만은 아니었다.
무덤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철통 같이 지키고 있었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예수의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일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에.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갔다고 하자.
총독에게 그렇게 말하여라.
뒤는 우리가 봐 주겠다. 니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러니. 너희들은.
<우리가 잠든 사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여라.
이것이. 우리 모두가 살 길이다."
이에. 경비병들은. 로마 총독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누구인가?
예수가 잡히시던 날 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무서워서.
그날로 도망치던 사람들이 아닌가?
근데. 예수의 시신을 훔쳐가기 위해 밤중에 왔다고?
그것도. 로마 군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데.
아무런 무기도 없이. 아무런 보호 도구도 없이.
그들과 맞서 싸워서. 예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얘기 일뿐만 아니라. 정말 허무맹랑한 얘기다.
근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다.
'삼인성호'라는 말처럼.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내는데.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그 정도 말도 못만들어내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가찌 뉴스를 만들어 내고.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사람들도 잘못됐지만.
가짜 뉴스를 믿고. 가짜 뉴스를 따르는 재전파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잘못됐다.
가짜 뉴스는. 잘못된 소식은.
독자들이 바르게 듣고. 바르게 깨달아.
바르게 교정하고. 바르게 시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고. 문제가 더 확산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는 꿋꿋이 살아 숨쉰다.
아무리 거짓이 팽배하고.
아무리 거짓이 꼼수를 부린다 하더라도.
거짓은 결국. 거짓일 뿐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진리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고.
이것은. 마지막 날에. 마지막 때에.
더욱 선명하고. 더욱 확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도.
그 진리를 믿고. 그 진리를 바라며.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 우리 눈에 보이는.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나. 감정을 믿지 않고.
오직 우리의 왕이시요. 영원히 변함없고 신실한. 우리 주님을 바라보고 찬양할 때.
오늘 우리가 그 주님 안에서. 승리하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을 주님 앞에 드리기 원한다.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이제 곧 오실 우리 왕.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이제 곧 오실 우리 왕.
거룩.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하나님 나라 임하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생명의 주요. 부활의 주님이신. 우리 주님 안에 거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우리 주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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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8:1-10
안식일이 지나고.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으러 갔다.
예수님의 못다한 장례를 마저 치루기 위함이었다.
이에 그들은. 걱정과 근심을 하고 있었다.
"삼엄한 로마 경비병들에겐. 뭐라고 말할까?
누가 우리를 위해. 저 돌문을 열어줄까?"
근데. 무덤에 도착해 보니. 또 다른 걱정과 근심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미 돌문이 열려 있었고.
우리 주님은. 거기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못 찾아온 걸까? 아닌데… 여기 맞는데…
근데. 주님은 어디 계신 거지?"
그들이. 불안함과 두려움에 쌓여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서. 부활의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는. 그가 약속한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터이니.
너희는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빨리 전하여라."
그리고. 그들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가는 길에.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주께서 친히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의 몸과 생명을 보이시며. 당신의 부활을. 직접/몸소 보이신 것이다.
결국.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제일 먼저. 몸소/직접 경험한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이 부활의 영광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가장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던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의 복음이. 가장 먼저 전파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이. 왜 그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신 것일까?
어떤 측면에선. 이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없는.
가난하고 어렵고. 힘든 자들인 것도 맞지만.
나는. 그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들이. <바랄 수 없는 소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예수님 당시에.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근데. 왜 하필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우리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되었을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단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뭐 때문에. 우리 주님이 그들에게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들이. <바랄 수 없는 소망 가운데. 우리 주님을 바라고. 그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누가 예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가는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들이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얼마나 믿고. 얼마나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꿈꾸고 소망하는 것조차 어려웠겠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살아생전.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컸었고.
어떻게든. 그분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살아생전 소망을 가졌던 분은. 오직 주님. 한분밖에 없었고.
그분이 지금은 죽으시고. 이 땅에 없으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 주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 주님께 마음을 두려 하였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당신의 부활과. 당신의 생명을 직접 보여주신다.
그들이. 바랄 수 없는 가운데. 우리 주님을 믿고 바랐기 때문이며.
그들이. 소망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우리 주님께 소망을 두고. 이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고. 이와 같은 복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예수를 경험할 수 있는가?
누가 예수를 만날 수 있는가?
누가 예수의 옷을 붙잡고. 누가 예수의 몸을 만질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어떤 신분이나. 역할이나. 지위가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께 마음을 두고.
그분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은혜가 주어지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은혜와 복을 영원히 소유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굳게 닫힌 돌문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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