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7:27-44

우리는 흔히. 쉽게 달아 올랐다가. 쉽게 식는 사람들을 가리켜.
'냄비 근성'이라고 한다.
한 때는. 내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열광하고 기뻐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차갑게 식고. 싸늘하게 돌아서는 것이.
'냄비근성'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사회학자는.
"냄비근성"이 <사회적 동조 현상>과 <지속성 기대 붕괴>라는 두 가지 특징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회적 동조 현상>이라 함은.
어떤 사안/이슈에 대해서.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람들이 가니까. 나도 거기에. 그냥 휩쓸려서. 그냥 따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고.

<지속성 기대 붕괴>라는 것은.
우리가 바랐던.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것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그것에 대해. 더 화를 내고. 더 차갑게/싸늘하게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냄비근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두 가지 특징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딘가를 향해서/무언가를 향해서. 그렇게 열광하다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쉽게 돌아서고. 쉽게 팽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은. 더 화를 내고. 더 차갑게 돌아선다.
왜냐면. "내가 그랬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으니까.
이것이. 냄비근성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공통적인 특징인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는 모습/반응이 이런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복음서를 처음 열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얼마나 열광하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만 들으면.
정말 개떼처럼. 우루루 몰려왔다가.
그분이 가는 곳마다. 그분의 손을 잡기 위해서. 그분의 옷을 만지기 위해서.
그렇게 열광하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도. 크게 예외는 아니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배움을 얻고자. 한밤중에. 아무도 몰래 그를 찾아왔었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위 앞에. 놀라고. 두려워 떨었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모습은.
이전과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한때는. 예수님에 대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광하고. 흥분했었다면.
지금은. 예수님에 대해서. 독기를 품고. 악한 마음으로.
그분께 열광하고. 그분께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총독의 병사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욕>하고…"

도대체. 이들은 뭐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한단 말인가.
도대체 예수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예수님을 욕하고. 모욕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에겐.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의 마음은 차갑게 식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라도. 예수를 욕하고 조롱해야 했으며.
그렇게 예수를 욕하고 조롱할 때. 자기들도 무리 속에서/군중 속에서.
보호받고.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께 가진 관심/열기도. <냄비근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뜨겁게. 정말 발갛게 달아 올랐다가.
지금은. 차갑게. 정말 차갑게 식어버린 그들의 모습….


근데.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모습이. 다른 게 아니라. 오늘 우리의 모습과도.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어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열광하고. 그분께 감사를 표하고.
그분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난 다음. 지금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고백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차갑게 식은 마음으로.
그냥 행사를 치른 듯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바라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기억하고. 그분을 따르며.
그분을 묵상하며. 그분 안에 오늘을 살아가길 바라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쉽게 그분을 잊고. 쉽게 그분을 팽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차갑게 식은 객석의 모습이라고 할까나?
한때는. 정말 뜨겁게 열광하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무대.
어쩌면. 오늘 우리 마음이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마음이.
텅 빈 무대/텅 빈 객석과 같지 아니하고.
정말 우리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과 뜨거운 마음으로 가득한.
그런 우리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우리 주님을 향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그런 냄비 근성과 같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을 향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함없는 마음으로.
우리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랐으면 좋겠고.
우리 주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이벤트나 사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정말 오늘 우리의 일상이 되고. 소망이 되는.
그런 우리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리며. 주님 앞에 나아가기 원한다.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주 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 드리네. 주님을 향한.
노래 이상의 노래. 내 맘 깊은 곳에. 주께서 원하신 것.
화려한 음악보다. 뜻 없는 열정보다. 중심을 원하시죠.
주님께 드릴. 마음의 예배. 주님을 위한. 주님을 향한 노래.
중심 잃은 예배 내려놓고. 이제 나 돌아와 주님만 예배해요."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이 찬양의 고백과 같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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