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4:1-16
누군가 그랬다.
"섭섭함이란. 안 해줘도 되는 걸. 안 해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근데.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누군가 내게 섭섭함을 느끼게 했을 때. 그것을 굳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 안 해도 되는 거니까.
안 해도 되는 걸. 안 한다고 해서.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섭섭함의 감정은 남는다.
그래서. 관계가 쉽지 않다.
말하자니. 내가 쫌스러운 것 같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속으로 숨겨두려니.
마음이 어렵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게. 섭섭함의 감정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브람도. 롯에게 서운함/섭섭함을 느꼈을 것 같다.
실제로 지금까지 아브람이 롯에게 해준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란 땅에서 지금까지.
아브람이 얼마나 많은 돌봄과 사랑을 주었는가.
그리고. 굳이 따지고 보자면.
롯이 지금까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 과연 누구 덕분인가?
아브람 덕분 아닌가.
아브람이. 아내를 팔아 먹어서. 그것 때문에 재산을 얻게 되었고.
그게 종자돈이 되어서. 지금까지 재산을 불려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근데. 이놈의 시키가. 가란다고 정말 가버리네!
지금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줬더니.
은혜를 몰라보고. 지 것만 챙기고.
니가 먼저 땅을 골라라고 했더니. 정말 노른자 땅만 쏙 골라서 가져가고.
아브람 입장에선. 그런 롯이 얄밉고. 속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롯에게 책임을 묻긴 그렇다.
왜? 굳이 짜지고 보면. 롯의 잘못이 아니니까.
롯의 입장에선.
먼저 선택하라고 해서. 선택했을 뿐인데.
왜 이제 와서. 책임을 묻냐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브람 입장에선.
롯을 바라보며. 속상함/서운함/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굳이 묻고 따지자니. 그런 자기 모습이 너무 쫌스럽게 느껴지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롯의 모습이. 너무 이기적이고. 얄밉게 느껴졌던 것이다.
근데. 그런 아브람에게 한 가지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것은. '롯과 그의 가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아브람과 그의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나 몰라라'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러게. 왜 굳이 소돔 땅으로 가서. 이 고생을 하는 거야?"라는 마음이 들고.
"왜 그놈의 시키가 저지른 잘못을. 내가 책임져야 하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아브람 입장에선. 롯이 얄밉고 서운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충분히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러자니. 마음이 계속 부대낀다.
롯이 얄밉고. 서운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식을 듣고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아브람은. 인간적인 감정을 뒤로 하고.
'그날밤' 군대를 이끌고. 롯을 도와주러 나선다.
어찌보면. 318명이라는 적은 군대로.
롯을 구하러 간다는 것이.
허무맹랑하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브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을 구하러 전쟁에 뛰어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바른 선택/옳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 같다.
"오늘 나는. 사랑할 만한 사람만 사랑하는가.
아니면. 나에게 섭섭함/서운함의 감정을 느끼게 한 사람을 향해서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낭비하며/허비하는 인생을 살아가는가?"
"나는. 인간적인 감정과 생각대로. 행동하며 판단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내게 주어진 삶의 과제와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가?"
어찌보면. 오늘 우리는.
나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도 선을 행하고.
나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나도 악으로 갚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수고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굳이. 그렇게까지 수고하며 살아가는 게.
바보 같고. 어리석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어리석은 선택/결정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주께서. 우리를 향해. 늘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자신의 삶을 낭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과 사랑을 따라서.
내 삶을 내어주고. 허비하는 삶으로. 초대하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읽으며.
주님은 우리에게. 계속 불편한 질문을 남기시는 것 같다.
"오늘 우리가. 사랑하며.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우리에게.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
오늘 우리는. 그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돌아보며.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아브람의 모습을 본받길 소원한다.
아브람이.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날 밤에.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롯을 구하러 갔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해. 깨어지는 삶/허비하는 삶으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인간적으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이 든다 하더라도.
이런 내 모습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마음과 생각을 뒤로 하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과제와 유업을 따라.
넉넉한 마음과 사랑으로.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길 소원한다.
그래서. 주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칭찬하시고.
주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은혜 주시길 기도한다.
오늘 하루.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삶에. 충만히 거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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