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5:42-47

한 사람이 빌라도를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다.

"예수님의 시체를 주십시오.
해가 진 후에도. 예수님의 시체를.
나무에 그대로 달아놓을 수 없습니다."

빌라도는 놀랐다.
"예수께서 벌써 죽으셨나?" 하는 점도 의문이었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커밍아웃과.
그의 당돌한(담대한) 태도에. 또 한 번 놀란 것이다.

실제로.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이 두려워서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는데.
이제는 180도 달라졌다.


과연.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하였을까?
무엇이. 그를 빛 가운데 나아오도록 하였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이었다.

예수의 십자가가. 그의 마음에 불을 붙였고.
믿음의 각성을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걷어내고.
하나님 안에서 담대함과 평안함을 얻게 되었다.


끝이 아니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변화는.
다른 이들에게도 변화를 주었다.

성경은 그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니고데모"를 가리킨다(요 19:39)

니고데모가 누구인가?
영생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지만.
사람들의 눈이 부끄러워.
한밤 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이 아닌가?

그랬던 그가.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예수님의 장례를 직접 치른다.

비밀스러웠던 / 또 불완전했던 그들의 신앙이.
공개적이고/ 또 완전한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의 삶에 잔잔하고도. 확실한 변화를 가져온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제와 오늘은. 또 어떻게 다른가?

회심은. 말이 아니라. 삶이며.
회심은. 한 순간이 아니라. 영원한 과제임을 기억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또 니고데모의 모습처럼.
회심의 제자로 매일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4.12(금) 막 16:9-13  (0) 2019.04.12
2019.04.11(목) 막 16:1-8  (0) 2019.04.11
2019.04.09(화) 막 15:33-41  (0) 2019.04.09
2019.04.05(금) 막 15:16-20  (0) 2019.04.05
2019.04.04(목) 막 15:6-15  (0) 2019.04.04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