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2:22-29
'관종' 바울의 설교가 마쳤다.
아니, 바울이 설교를 마쳤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설교를 중단시켰다.
도무지 계속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리친다.
"Kill the beast!" "이런 놈은 죽여야 해! 절대 살려두면 안 돼!"
옷을 찢고. 흙을 집어 던지는 사람들로 인해.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자. 천부장이 다시 바울을 데리고 들어온다.
좀 잘 대해 주려 했는데...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문제만 일으키는. 바울을 향해.
그도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쳤나 보다.
결국. 아랫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봐.
만약. 순순히 답하지 않는다면. 고문을 해서라도 그 이유를 찾아내!"
로마 군사들은. 이내 바울을 바닥에 눕히고. 가죽줄로 그를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찍을 꺼내서. 바울을 때리려 한다.
그러자 바울이. 그제서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잠깐! 로마 시민을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매질해도 되는기요?"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조금 웃기다.
지금까지 그렇게 당당하던 바울은 어디 갔을까?
감옥에 갇혀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심하게 돌팔매짓을 당해도. 꿋꿋하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었는데.
이제와서. 급급히 자신의 신분을 알리는 바울의 모습이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다.
물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1) "바울이 지금 죽으면 안 되지. 로마 황제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앞으로 바울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앞으로의 사명을 생각하며. 바울의 지혜로운 판단이라 볼 수도 있고.
2) 두번째는. 바울이 배설물로 여기던. 로마 시민권이.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지켜주는 것을 보면서.
어떤 수단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선용/잘 사용되면. 유익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재물이나 명예나 모든 것이 배설물과 같지만.
그 자체로 해롭고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적인 바울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 바울도 두려울 수 있지..
채찍을 맞을 때마다. 그 줄끝에 달려있는 동물의 뼈와 이빨들이.
자신의 살점을 뜯어가는 고통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사실 생각만 해도. 너무 고통스럽고 끔찍하다
그러니. 바울의 행동을 굳이. 좋게 평가/해석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간적인 바울이라도 괜찮다.
오히려. 내가 더 관심있게 보는 것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 29절 말씀이다.
"(바울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곧 물러갔다.
천부장도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결박해 놓은 일로 인하여 두려워 하였다."
말씀을 계속 읽다 보니. 이 말씀이 나에겐 이렇게 들린다.
"그래.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를 공격하며.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지.
그들이 볼 때. 우리는. 정말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거야...
하지만. 그날에 우리의 신분이 드러나고. 우리의 정체가 드러날 때.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워할까?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발을 동동 굴리고 있지는 않을까?”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다음.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였던 것처럼.
또. 나발이. 다윗을 알지 못해서. 그를 비난하고 조롱하였다가.
다음날 그의 정체를 알고. 그의 몸이 굳어 죽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위치가 드러나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두려워 떨기 시작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약속의 그날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어느 나라에 속한 사람인지.
우리의 시민권과 정체성을 분명히 알 때.
그 때. 우리 안에. 힘과 소망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답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 매질하는 법이 어디 있소?
그렇게 해도 되는기요?"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심판자 되시고. 우리의 변호자 되심을.
믿고 바라며 살아가는. 오늘 한 날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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