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1-12
잔치를 할 때면. 흥이 있어야 한다.
산통을 깨서도 안 된다.
축제에는 기쁨이 넘쳐야 하고. 파릇파릇한 생명력 또한 더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힘을 얻고. 즐거워 할 수 있다.
그것이. 축제의 묘미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나라는 축제와 같아서. 그곳엔 생명과 기쁨이 넘쳐야 한다.
그렇기에 성경은. 에덴 동산을 가리켜.
어떤 부족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한 곳이라 말하고 있다.
그것이. 천국의 기쁨/소망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가나 혼인 잔치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포도주가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잔치에 먹을 것이 떨어지다니.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난리가 났다.
"이 일을 어떡하면 좋냐"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혼비백산 뛰어다닐 뿐이다.
하지만. 한 사람. 단 한 사람만 요지부동 한 체로 앉아있다.
그것은. 이 잔치의 책임을 맡은 사람. Party Director '연회장'이다.
오히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체.
포도주를 가져온 하인에게. 술주정 부리듯. 짜증(?)만 부리고 있다.
"어이… (딸꾹)… 술 가져와!! (딸꾹)"
그리고 포도주를 맛보고 난 다음 이렇게 말한다.
"뭐야. 왜 이렇게 맛이 좋아!
잔치를 할 때면. 제일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 놓아야 하는 거 아니야! (딸꾹)
근데 왜 이걸 이제 가져와!"
그런 측면에서. Party Director. 연회장은.
오늘 본문에서. 제일 재수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도 다하지 않고"
"도리어 술에 취해. 자신의 직분 또한 망각하고"
"흥청망청.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도리어. 이 일을 수습하는 사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허드렛 일을 하는 하인들"이다.
실로.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예수야! 어쩌면 좋냐!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를 망칠 판국인데 어떡하면 좋겠냐"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도울 수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에.
주님을 찾아가 이렇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하인들도 마찬가지다.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하인들은 군말하지 않고. 성실히 물을 채운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신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잔치 석상의 분위기가 깨지지 않도록 도우셨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번째 표적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도. 마리아와 하인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길 소원한다.
실제로 어제 오늘. 우리 사회는. ‘정인이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더 큰 충격은. 이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온갖 좋은 이미지로 포장된. 독실한(?) 크리스챤이라는 말에.
우리는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뭐 이런 X 같은. 경우가 있다는 말인가.
가뜩이나 교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한 가운데.
'정인이 사건'으로 우리는 더 큰 충격과 공포를 안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직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잘못/폐단에 빠져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리어. 여전히 자아도취에 빠져서.
흥에 취해. 흥청망청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렇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든다.
이러다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촛대를 옮기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들고.
맛 잃은 소금처럼.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ㅠ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려 간구할 뿐이다.
떨어진 포도주를 채우실 분은. 우리 주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주님 앞에 엎드려. 간곡히 구할 뿐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도와주시길 간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 겸손히 물을 긷는다.
때로는 이 일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허비하고. 낭비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따라. 겸손히 물을 긷는다.
우리 주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임을 믿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그러하길 소원한다.
"유명무실"한.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진실로.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믿고 고백하는.
"무명유실"한. 그런 내실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원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큐리에 엘레이손.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큐리에 엘레이손.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은혜/자비만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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