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1-9
가족은. '애증'의 대상이다. 예수님에게도 그랬을까?
실제로. 어제 본문까지만 하더라도.
예수님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였으며.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는. 힘겨운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근데. 집에 들어왔더니. 당신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살살 긁는다.
"형님. 큰 일 하겠다면서요.
유대 지방에 있는. 형님 제자들한테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여줘야 할 거 아니예요.
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게 어딨어요.
당당하게. 일어서세유!
떳떳하게. 사람들 앞에 맞장 뜨란 말이에유!(3-4)"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아마도. 한판 했을 것 같다.
왜?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건 참아도. 가족들이 그러는 건 못 참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겐. 예의 바르게 행동할 수 있어도.
가족들한테는. 성질이 먼저 나오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성질을 꾹 참고. 그들을 인애함으로 대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들 먼저 다녀오렴. 나는 이번 명절에는 올라가지 않는 게 좋겠구나.
내 때는 아직 차지 않은 것 같구나."
그런 측면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으니.
공생애를 앞두고. 광야에서 시험 받으시던. 예수님과 사탄의 대화가 생각난다.
"니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니 힘을 보여봐."
"니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떡이 되게 해봐."라고 말하던. 사탄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힘을 힘으로 갚지 않으신다.
악을 악으로 갚지도 않으시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신다.
낮아짐으로. 자신의 본을 보이시며.
죽으심으로. 당신의 뜻을 세우셨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 십자가의 길인지. 무엇이 승리의 길인지.' 보여준다.
나는/우리 공동체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세우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전 4:20)"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늘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겠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이며.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드러내는 것은.
말싸움에서 이기고. 논리로 다른 사람을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삶으로. 진실함으로 보여주고. 감동케 하는 것이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그러하길 소원한다.
'하나님 나라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씀의 고백처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마다.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고 실현되길 소원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주님의 교회다.
(feat. 우리는 주의 움직이는 교회 youtu.be/R9z0ISZJS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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