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45-52
'삼인성호'.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그만큼 '무리'의 힘은 강하다.
무리 속에서. 개인의 의견을 말하기도 쉽지 않고.
그 속에서. 우리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것도.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요즘 학교에서. '왕따'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지만.
사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역동을 보면. 더욱 가슴이 아프다.
왜냐하면.
"내가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먼저 왕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모습/행동이 그렇다.
무리와 다른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일인자의 마음/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해서도 안 된다.
괜히. 튀는 행동을 했다가는.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며.
그래서 우리는. '나를 지키기 위해/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더욱 모질게 괴롭힌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런데. 이것은 비단 오늘의 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동일하게 반복되어 온 일이다.
오늘 말씀도 그렇지 않은가?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 경비병에게. "예수를 잡아오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그들은 예수를 잡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어찌하여 그를 끌어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그 사람을 끌어와야 할 이유를 모르겠던데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무리가. 핀잔을 준다.
"너희도 미혹된 것이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무안을 주며. 쪼인트를 까고 있는 것이다.
'니고데모'에게도 마찬가지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행동/모습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율법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하지만. 사람들이. 니고데모에게 핀잔을 준다.
"당신도 갈릴리 사람이오? 당신도 그들과 한 패요?"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보이스가 큰 사람들/힘이 강한 사람들이.
힘이 없는 사람들을 몰아붙이면서.
"어떻게 그딴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너도 그 사람과 한 패냐고?"
그 사람을 몰아붙이고. 집단 이지메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 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이코/또라이'로 치부해 버리며. 그 속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나와 우리 공동체에. 이렇게 물어본다.
"나는/우리 공동체는. 무리 가운데 갇혀서. 다른 사람을 매도하고. 죽이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우리 공동체는. 무리가 무서워서. 그 속에서 진리를 말하기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닐까?"
말씀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땅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된다.
"주님.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에. 늘 흔들립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면. 나 역시 거기에 쉽게 편승하고.
쉽게 선동하고. 쉽게 선동당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가 힘들어 하지 않았을지. 마음이 아프고.
나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그게 두렵습니다.
주님. 우리의 악한 혀와 완악한 마음을 용서하여 주시고.
상하고 깨어진 친구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고쳐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렇기에. 주님. 우리가 무리를 두려워하고. 무리를 따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도리어.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따르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아니오'라고 말하더라도. '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고.
악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 가운데 바르게 설 수 있는. 힘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하나님의 정의/하나님의 평화(샬롬)이 이뤄지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기에. 이 아침.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선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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