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9:13-34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던 사람'의 눈이 뜨이게 되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럴 수밖에.
어느 누가.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의 눈을 고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데려갔다.
이 일을 직접 설명하고. 확증을 받기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눈을 뜨게 된 사람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도리어 이 일이 어떻게 된 거냐며 추궁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반복해서 질문한다(15절, 17절, 26절).
그리고. 결국에는 그 사람의 부모를 데려오고(18절-19절).
자신들의 힘으로. 그 사람을 겁박하고.
힘으로 찍어 누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24절, 28절, 34절).
왜 그럴까?
이미 답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22절은 이렇게 말한다.
"유대 사람들은 이미 결의해 놓았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말이다."
그러다보니. 이 대화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 과정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결국. 그는 바깥으로 내쫓김을 당하였다(34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증언하며.
순순히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회당 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생각/질문을 하게 된다.
"누가 정말 눈 먼 사람일까?
왜 사람들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달려드는 걸까?
왜 사람들은. 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생각과 틀을 굽히지 않는 걸까?
우리 주님께서. 육신의 질병은 고칠 수 있으시지만.
마음의 질병은 고칠 수 없는 걸까?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어떻게 고칠 수 있으시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님을 보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은. 고칠 수 없는 걸까?
억지로라도. 때려 패서라도.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시면 안 되는 걸까?"
말씀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과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게 된다.
"주님. 오늘 말씀에 기록된. 바리새파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고. 헛헛한 마음을 안게 됩니다.
나도 이들처럼. 눈 먼 사람일까요?
아니면. 주님을 향해 눈이 밝은 사람일까요?
눈 먼 사람의 부모를 보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눈이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살아있는 권력 앞에 납작 엎드리며.
아무런 저항/말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며.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눈 감고 넘어갑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자식 입장에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내 편'이 되어줘야 할 부모님이.
'나를' 지키고. '나를' 보호하기 보다.
자기 앞가림에 충실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결국…
정말 눈이 밝아야 할 곳/대상에 대해서는. 눈이 흐려져 있고.
눈이 어두워야 할 곳/대상에 대해서는. 눈이 밝게 빛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오늘 우리의 모습과 같아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주님. 그렇기에…
어두운 우리의 눈을 밝혀주시고.
주님 안에서. 밝고 선명한 빛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욕심을 따라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눈 앞에 보이는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외면하며 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도리어.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신. 당신을 따르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진리와 함께 머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야곱처럼. 노년에 눈이 어두워. 영적인 분별력이 흐릿한 사람되지 않게 하시며.
모세처럼. 그 눈이 흐리지 않고. 밝게 빛나서.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행하는 자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기에. 이 아침 주님 앞에 이 찬양을 부르며 나아간다.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진리를 보게 하소서.
진리의 열쇠 내게 주사. 참 빛을 찾게 하소서.
깊으신 뜻을 알고자. 엎드려 기다리오니.
내 눈을 뜨게 하소서. 성령이여'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원이며. 간절한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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