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9-20
요한은. 지금. 밧모섬에 사로잡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의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 섬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요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든 관계망이 차단되었고.
그는 철저히 고립된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쩌면. 세례 요한처럼.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하지는 않았을까?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만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고백하였지만.
훗날. 그가 옥에 갇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물음에 빠졌던 것처럼.
사도 요한에게도. 그런 날들이 있지는 않았을까?
성경이. 구체적으로 이 사실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적인 생각/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감정이 요동치고. 믿음이 흔들리는.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랬던 요한에게. 믿음의 변곡점/회심을 경험하는 날이 찾아왔던 것 같다.
특별히 10절 말씀을 보니. 성경이 뭐라고 기록하는가?
"내가. 주님의 날에. 성령에 사로잡혀(10절)"라고 기록한다.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앞서 9절에서는. '내가 밧모섬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하던 요한이.
10절에서는.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것은. 성경의 의도적인 기록이다.
요한은.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는. 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갇혀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님의 계시를 받은 그 날을. 결코 잊을 수가 없고.
한 때. 내가 낙심하고. 믿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음을. 성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요한은. 그날에…
크고 위엄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앞에. 완전히 압도 되었을 것이고.
그 크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인자한 목소리로.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실 때.
사도 요한은 그 속에서. 한없는 위로와 평안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마 11:3)"라고. 되묻는 세례 요한에게.
그리스도께서.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6)"고 하셨던 것처럼.
오늘 주님이. 사도 요한을 직접 찾아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날에.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힐 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세상의 모든 올무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고.
"그날에" 하나님 앞에. 홀로 서며.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릴 때.
우리는 "현재"에 머물지 않고.
"영원"에 대한 생각/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물어본다.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서. 내 영혼의 회심/믿음의 변곡점을 경험한 사람입니까?"
"그날은. 과거의 한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 매일의 일상으로. 경험되고 고백되는 사건입니까?"
"우리는. 현실에 매여서. 현실에 사로잡혀. 그 속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성령에 매여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읽으며.
세례 요한도 생각났고.
열왕기하 5장에 등장하는. 나아만 장군의 어린 아이/여종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고. 낙심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날에. 성령에. 굳게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것은.
모든 인간/사람이 통과해야 할. 믿음의 관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눈앞에 보이는 현실 앞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주저 앉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입니다.
주님. 우리가 그런 사람되게 하여 주십시오.
세례 요한이. 그날밤에.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처럼.
사도 요한이. 주님의 날에.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 것처럼.
나아만 장군의 여종이. 주님의 날에.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위로로 가득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여 주시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과 믿음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우리 주변에. 낙심하여.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 그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시고.
주님. 그들에게. 또 친밀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이 눈에 보이는 상황/현실 앞에. 주저 앉지 하여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담대히.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가. 우리에게. "주님의 날"이 되길 소원하며.
주께서. 우리 인생을 붙드시고. 우리 인생을 살피시길 소원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요한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7.13(화) 계 3:1-13 (0) | 2021.07.13 |
---|---|
2021.07.10(토) 계 2:18-29 (0) | 2021.07.10 |
2021.07.09(금) 계 2:8-17 (0) | 2021.07.09 |
2021.07.08(목) 계 2:1-7 (0) | 2021.07.08 |
2021.07.06(화) 계 1:1-8 (0) | 2021.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