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6:9-17
5번째 봉인을 뗄 때에. 이런 소리가 들린다.
"주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참아야.
이 땅에. 불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겠습니까."
성경은 이들의 존재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또 그들의 증언 때문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데.
오늘 아침. 그 기도가. 너무 절실히 들리는 것 같다.
실제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을 때도 있고.
때때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 속에서.
이 땅의 삶이 너무나 버겁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이렇게 탄식하게 된다.
"주님. 언제까지.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주님. 곧 오신다고 하더니. 도대체 언제 오시는 겁니까.
주님. 언제쯤 우리의 탄식 소리를 들으시고.
언제쯤 우리의 억울함을 신원하여 주시겠습니까.
도대체 언제쯤. 이 땅에 고통과 슬픔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승리하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 날을. 너무 너무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합니다…"
하지만. "언제냐"라는 물음에.
주님은. "not yet.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뿐이다.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다.
"끝을 알면" 분명히 기다리기라도 편할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니다"고 말씀하시며.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님이 우리가 죽기를 바라시는 건가?
그 수가 찰 때까지. 우리가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주께서. 순교하는 이들의 수를 세면서.
그들의 죽음을 그냥 목도만 하고 있겠다는 건가?"
하지만. 이것은. 문자적으로.
주께서 그들의 수를. 하나 둘 카운트 하면서.
그 숫자가 다 채워질 때까지.
주께서. 꿈쩍도 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의 방점은.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는 것이며.
"그날이 오기까지"
주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도.
안타깝게.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날이 곧 멀지 않았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실제로 7번개의 봉인 가운데. 5개가 떼어졌으며.
이제 2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6번째 봉인을 뗄 때에.
그날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환상 가운데 보여주면서.
그 날이. 허구가 아닌 실제이며.
그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게 될 것을 보여준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의 말씀을. 좀 더 쉽게/직접적으로 풀어 써 본다면. 이런 게 아닐까?
"기다린다는 게 쉽지 않지? 네 마음을 알고 있다.
그 속에 고통하며. 인내하는 너의 수고를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오늘도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갈망을 품고 살아가는.
너의 마음과 고백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구나.
하지만. '그 때가 언제냐'라는 물음에. 내가 달리 해 줄 말이 없구나.
그 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시기에.
나도 그날을 기다리며 너희를 위해 기도할 뿐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날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날은 곧 속히 올 것이다는 것이다.
그날은. 허구가 아닌 실제이며.
그날에.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며.
하나님의 진노/그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피곤하여 낙심할 때마다.
나를 생각하며. 내게 부르짖기를 소원한다.
기도란 것이 그런 게 아니겠더냐.
어느 곳에도. 하소연 할 길이 없고.
그 어디에도. 우리의 마음을 쏟아낼 길이 없을 때.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주고.
내가 너의 신음 소리와 탄식 소리를 듣고 있지 아니하냐.
그러니 너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함으로. 주님 오심을 기다리길 소원한다.
이것이. 너희를 향한. 나의 마음이란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마치. 주님이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하신 다음.
마지막으로.
"힘내! 화이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조금은 어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왜? 그게 맞는 거니까.ㅎㅎ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으로 살게 하여 주시고.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기도를 잃지 않고. 소망의 기도를 잃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오실 때.
주님 앞에 부끄러워 떨며. 주님의 낯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숨어지내는. 우리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기쁨으로 주님의 얼굴을 뵙고.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눈에 보이는 증거와 소망을 따라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영원히 변하지 않고. 또 썩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와 소망 더하여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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