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6:1-5
얼마 전. 교회 청년의 결혼식이 있었다.
이 청년은 개인적인 사유로. 교회에 잘 오지 못하는 친구였는데.
아마 어쩔 수 없이. 어떤 사유로. 주일에 결혼식을 잡게 된 것 같다.
근데 문제는. 결혼식 전 주. 이 결혼식을 두고 성도들 사이에서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주일에 결혼식을 할 수 있어? 그래도 되는 거야?
주일에 하는 결혼식을. 왜 예배 시간에 광고하고 그러는 거야?
그러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서.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 아니야?"
결국. 몇 몇 성도들의 건의로 인해. 2부 예배 때는. 해당 결혼식의 광고가 취소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니. 왜 그렇게까지 하셨을까?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그 청년에게. 또 그 가족에게. 무슨 사유가 있어서…
부득이하게/어쩔 수 없이 주일에 결혼식을 가지게 되었을 텐데.
우리가 그것을 한번 물어보고 헤아려 주면 안 되나?
주일에 결혼식을 한다고 하여. 모든 성도가 갈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
주일 성수를 위해서.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판단하고 정죄할 일은 아니지 않나?
도리어. 광고 시간에. 누구누구 집사님의 자녀 누구가.
이번 주일. 피치 못할 이유로 결혼식을 갖게 되었는데.
성도님들께서 주일 예배로 직접 참여하기는 어렵더라도.
만나시면 축복해 주시고. 축하해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음이 아팠던 것은. 이 일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한 해 사역 계획을 세우면서.
올해 어쩔 수 없이. 토/일/월 이렇게 수련회 일정을 잡았는데.
교회에서. 이것을 두고 또 말이 나왔나 보다.
"아니. 어떻게 주일을 빼먹고 수련회를 갈 수가 있어?
주일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지. 어떻게 수련회 일정을 그렇게 잡을 수 있어?"
이 소식을 듣고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우리가. 다른 데 놀러간 것도 아니고. 수련회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인데.
왜 이것을 두고. 이렇게까지 말이 나온단 말인가.
연초에 분명히.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드리고.
양해/설명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다시 이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청년들의 처지와 상황을 살피는 것보다.
그냥 교회의 전통과 율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
앞으로 어떤 변화와 도전을 하기 보다.
그냥 주어진 틀 안에서. 적당히/맞춰서 사역하는 게 더 좋은 걸까?
잘 모르겠다.
분명.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온 천하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왜 우리는. 주일이라는 시간에 갇혀서.
또 예배당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려는 걸까?
내가.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형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물을 담기 전에 그릇을 준비해야 하며.
마음을 담기 위해서는 몸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왜 우리는. 형식에만 집착하고. 그릇에만 집착하고 있는지. 그걸 잘 모르겠다.
미가서 6장을 보면.
우리 주님이.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쁨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원하시는데.
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범하였던 오류와 실수들을. 똑같이 반복하고 답습하려고 하는 걸까?
그래서. 여러모로 마음이 아팠다.
예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다는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에게. 욕을 먹고. 공격을 당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 주님이.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고쳐주고 낫게 하였는데.
이 일 때문에. 우리 주님이. 목숨에 위협을 느끼고. 공격 당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바리새파 사람들이 범하였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거듭나고 새로워지길 소원하며.
전통의 정신과 그 아름다움은. 소중히 여기고 귀히 여기면서도.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 전통을. 아름답게 고수하고 계승해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씨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견월지명.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고 난 다음에는.
달에 집중해야지. 손가락에 집중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고.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이라고 말하였던.
옛 선인의 고백을 따라.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며.
진리 안에서 기뻐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하며.
사랑 가운데 하나되고. 사랑 가운데 연합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어제와 같은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새로운 마음. 주시고. 주님의 성령을 부으사.
우리 안에 굳은 마음. 제하여 주님의 마음 주소서.
그리하여. 내 삶이.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의 영광. 주의 나라. 드러나는 삶 되게 하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의 맘 주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의 맘 주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새 일을 행하시고. 새 마음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새로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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