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5:12-26
오늘 본문을 보면. 두 명의 아픈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나병 환자'고. 한 사람은. '중풍병자'다.
두 사람 다 각각 심각한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나병 환자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금지당했으며.
중풍병자는 자기 스스로 몸을 움직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속죄함을 받는 일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그들은. 각각.
영적인. 사회적인. 정서적인. 육체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들이 나음을 입고. 해방을 겪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재밌는 것은. 이일이 그냥/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수고와 섬김/헌신을 통해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보면. 예수님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고 있다.
그 당시 나병환자는 사람들과 접촉을 엄히 금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병환자를 만진 사람은. 부정해지고.
이스라엘의 율법을 따라. 영 밖으로/마을 밖으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병환자를 멀리하고.
나병환자는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레 13:38-46)'는 말을 일삼고 다녔는데.
왜 예수님은 그에게 직접 손을 대시고 그를 고쳐주셨는가.
그에게 능력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는 말로 충분히 사람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앞에서.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실 때도. "꾸짖고. 말씀으로" 그를 고치셨고.
사람들이 몰려들 때도. 그는 말씀과 기도로 그들을 고치신 일이 있었다.
근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자기가 직접 손을 대고. 그를 고쳐주신다.
왜 그럴까? 그의 마음에 있는. 고통과 아픔/상처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부정한 자로/더러운 자로/하나님의 저주,형벌을 받은 사람으로 낙인 찍혀 왔었는데.
오늘 그 낙인을 벗겨주고. 씻겨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수고를 뒤로 하고.
직접 그의 몸에 손을 대시는데.
이것이 우리 주님이 하신. 사랑과 섬김의 표현이었다.
중풍병자의 네 친구도 마찬가지다.
예수께서 한 사람의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중풍병자의 네 친구가. 그를 침상에 메고 예수께 달려가는데.
그들은 어떠한 수고와 노력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친구가.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어떤 수고와 노력도. 기꺼이 달게 받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침상을 메고. 거리를 행진하고(18절)"
사람이 많아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하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기 시작하고(18절).
그렇게 지붕 위에서. 친구를 침상째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기 시작하는데(19절).
아마 그들의 전완근은. 이미 터지기 직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거운 사람을. 그 무거운 침대를.
지붕 위에서 버티고. 인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이 일을 감당한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수고하고 낭비하기를 아까워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얻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어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의 의미가 이와 같다.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되찾았다고 해서. 잔치를 벌이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되찾기 위해서. 99마리의 양을 두고 집을 나서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수고와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와 노력도 달게 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라면. 내 생명과 내 시간과. 내 물질과 내 소유를 들여서라도.
그를 얻고. 그를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아침.
말씀을 보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두 가지를 기도하게 된다.
먼저는. 오늘 우리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고. 자기 생명을 내어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그 사랑 앞에. 감사하지 않으며. 감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제일 먼저 기도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감사하며. 감격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기도드리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로. 거룩한 낭비로 드리는 것이다.
수고함 없이 어찌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해산의 고통 없이. 어찌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탄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따름이다.
오늘 우리의 기도 소리를 통해.
주께서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구원과 해방의 복음을 선포해 주시길 바라기 때문이며.
오늘 우리의 섬김과 수고를 통해.
오늘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서길 원한다.
"우리 죄 위해 죽으신 주. 십자가 그 사랑 감사하네.
날마다 주의 형상대로 변화되리라. 십자가 우릴 새롭게 하리.
놀라운 사랑 찬양하리라. 우리를 위해 생명 주셨네.
놀라운 사랑 찬양하리라. 십자가의 그 능력"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우리 죄 위해 죽으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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