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21-34


막다른 길에 선 것 같은 막막함과.

절벽 끝에 선 것 같은 절실함을 마주하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체면과 염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우선은 '살고' 봐야 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 궁리를 찾고. 모색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의 행적이 그러하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게 되자.

예수님을 찾아 그 발 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간곡히 청한다.

"예수님. 내 어린 딸 좀 꼭 살려주십시오."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난 12년 동안. 이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수고와 노력을 하였건만 모두 허사였다.

재산은 재산대로 탕진하였고,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갔다.

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여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결례를 범하였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자신이 손을 된다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예수님이 부정하게 될 수 있지만..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오직 한 가지 바람 때문이었다.

"정말 살고 싶다! 정말 낫고 싶다!"는.

오직 그 한 가지 바람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절박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직접 그 딸을 만나기 위해.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길을 나섰으며.

두려워하는 여인을 향해 "딸아 안심하고 가거라. 건강하게 살아라"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신다.



말씀 속에서 오늘의 길을 찾는다.


"나는 주님께.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오직 주님만이 나의 필요와 처지를 아시며. 오직 그 분만이 나의 피난처임을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가?"


또 한편으로.

"나는 탄식하며 울부짖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길을 걸으며"

"그들을 위로하고. 도우며. 그들을 회복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한 날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회복과 치유의 한 날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큐리에 엘레이손..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1.31(목) 막 6:1-6  (0) 2019.01.31
2019.01.30(수) 막 5:35-43  (0) 2019.01.30
2019.01.26(토) 막 5:1-20  (0) 2019.01.26
2019.01.25(금) 막 4:35-41  (0) 2019.01.25
2019.01.24(목) 막 4:26-34  (0) 2019.01.24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