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초대교회 일원이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날마다 경험하였고.
서로의 집을 돌아가면서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힘쓰는 가정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의 마음에 '욕심'이 찾아왔다.
'명예'는 얻고, '손해'는 보기 싫은. 두 마음이었다.
실제로. 어제 보았던 것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필요 이상의 "자기 집과 땅"을 팔아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힘쓰지 않았던가.
'욕심(탐욕)'이 판치는 세상, 제국의 땅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실현한 것이었다.
이것은. 누군가의 손을 통해. 강제로 시행된 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었을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이 일에 뛰어들었다.
다만. 자원하는 마음보다는.
사람들의 시선(눈초리)가 두려워서. 이 일을 시작한 것 같다.
그랬기에. 그들은 '꼼수'를 부렸다.
"소유의 일부는 떼어놓고(숨겨놓고).
나머지 일부만 사도들에게 가져다 주자.
우리만 서로 입을 맞추면. 아무도 모를거야."
그들은. 이것을 '묘수'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져야했다.
그러지 않았어도 될 것을(must 의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괜히 나서 가지고.
괜한 결과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말씀을 읽으며. 적잖은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가지게 된다.
특별히. 사도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건내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렸습니까?"
"정말. 이것이 전부입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태도에. 화가나서.
단호하고 엄중하게 꾸짖는. '비판과 정죄의 눈초리'보다는.
'안타까움과 긍휼의 시선'이 더욱 전해진다.
그들을 잃고 싶지 않은. 목자의 심정이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의 음성 앞에. 듣고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그분의 음성 앞에. 엎드리고. 자복하며. 회개의 은총 아래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더불어.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거룩을. 온전히 닮아가며.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한 영혼을 온전히 세우는. 그런 공동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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