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4:32-37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꿈의 교회'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목격했으며.
그 입술엔 기쁨과 찬양이 가득하였다.
또한 초대교회는. 서로의 필요를 돌보는 유무상통의 원리가 실현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신명기에 약속된. 희년(안식년)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누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을까?
두 가지 이유라 생각한다.

먼저는. 그들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 아래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은. '생존과 소유와 인정'의 욕구를 지니고 살아간다.
이것은 인간이 창조될 때부터 주어졌던 필요였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알지 못한 채. 이 마음이 탑재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하지만. 이 본성을 다스리고. 길들이는 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령의 소욕"에 사로잡힐 때이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들어가셨을 때.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까닭도.
그가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가 말씀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어제 말씀처럼.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했으며(행 4:31)
오늘은. 사람들이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한다(행 4:33).

결국. 초대교회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나. 흉내내기로 이뤄질 수 없다.
매일매일 우리 본성을 거스르며.
하나님의 은혜 아래 놓여 있을 때.
그 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이처럼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은. 모이기에 힘썼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나지 않는다면. 서로의 필요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을 투명히 나누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의 필요를 알 수 있을까.

아마도 초대교회는. 투명하게 서로의 삶을 나누며.
자신의 필요를 진솔히 나누며.
또 서로의 필요를 헤아리는. 눈과 지혜가 있었으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은밀하고 겸손한 사랑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진실한 구제였기 때문에.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삶이 그랬으면 좋겠다.
"성령에 이끌리어. 성령으로 충만해서. 큰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나라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길 꿈꾼다.

작은 일상에서부터.
내 주변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살피며.
그들과 함께 할 때.
하나님 나라의 소소한 재미를 알아갔으면 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의 기쁨은. 어쩌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바로 곁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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