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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4:1-18
뮤지컬 '영웅'을 보면.
제일 첫 장면에. '단지동맹'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 그라스키노 인근에 있는.
자작나무 숲에서 한 결의인데.
안중근과 그 동지들은.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를 제거하기롤 함께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결의에 대한 다짐으로.
왼손 약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썼는데.
그들은 그 손가락을. 단지/항아리에 모아 보관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단지동맹'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어제부터 우리는.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 설교를 듣고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여호수아의 다짐과 그 충성은.
정말 하늘을 찌를 것만 같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열거하는데.
그의 고백이나. 다짐 속에는.
조금의 거짓이나. 보탬도 없는 것 같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담대함과 진실함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오늘 우리 인생을 이끌어 오셨다는 얘기를 계속하는데.
그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어진다.
1)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강 저쪽에서 이방 신을 섬겼을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 오셨고.
2) 아브라함이 죄를 짓고. 약속의 말씀을 어길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쭉 이어오셨고.
3) 이삭의 때나. 야곱의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여기까지 우리 삶을 인도해 오셨다고 얘기한다.
4) 그래서 출애굽할 때에.
애굽 사람들이 우리를 뒤쫓아 올 때에.
주께서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애굽 사람들을 물 아래 수장하게 하였으며.
5) 출애굽 광야길에서. 아모리 사람들이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올 때도.
주께서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6)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그들에게 화가 있기를 기도하였지만.
주님은 그것을 바꾸어. 선으로/축복으로 오늘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며.
7) 오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기까지.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한번도 우리를 떠나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 13절을 보면.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너희가 그 가운데서. 심지도 아니하고. 수고도 하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게 하셨다(12-13)"고 얘기하는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주님의 축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 한분/여호와만 섬길테니(15절)".
“오늘 너희는 어떤 자세/스탠스를 취할 것인지. 분명히 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과 1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여호수아 5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를 찾아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수 5:15)”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발에서 신을 벗고.
여호와께 순복하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도 이렇게 대답한다.
16절부터 18절까지를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여기까지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주께서 한결같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셨으며.
주께서 이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모든 아모리 족속들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셨으니.
<그러므로 우리도>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며.
<그는 우리 하나님 되심>이라(16-18절)"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결단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결단코 주님을 섬긴 적이 있던가.
우리가 알다시피. 여호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
그들은 그 길로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을 했으며.
유월절 전날.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베드로는 그날밤. 바로 주님을 배신하고. '나 몰라라' 하고 주님을 도망쳤다.
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나는 결단코 주님을 져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그들이 지키지는 못했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고.
한결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물어보시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왔는데.
너는 앞으로 너의 생을 어떻게 드리길 원하냐?
너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답하겠느냐.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에게 반역하며.
머뭇머뭇거리며. 기웃기웃거리던 때가 있었는데.
너희도 그때 그 모습처럼. 나를 반역하며 떠나는 삶을 살겠느냐?"
하나님의 이런 물음 앞에.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섬기고 싶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단코> 주님을 버리지 않고.
내가 결단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 돌아오고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주님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고 계실 때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던 사도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주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따르기 원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실수하고 넘어지는 때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따르길 원한다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때론 하나님을 배반하고. 때론 하나님을 떠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 돌아오고. 다시 주께 귀속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시간이 흐르고. 삶이 흐를수록.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짐으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또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주께서 지난 시간 동안. 신실하게 우리 삶을 이끌어오심"에 대한.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
지금까지 오늘 우리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 오신 우리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삶도. 신실하게/진실하게 인도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진실함으로. 온전함으로 주를 섬기며.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오직 주님만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 드리길 원한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신실함을 찬양하며. 그분의 신실함을 따라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하나님 한번도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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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3:1-16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는데.
오늘 나는 거기다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어서. 신앙을 남긴다"고 말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모습이 그렇다.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아. 이제 하나님 앞에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그때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6절)"
이것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다음을 잇는. 리더로 부름 받을 때.
그때 우리 주님이 주신 말씀이다.
"너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자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고 하셨는데.
여호수아가 그 말씀을 바르게 지켜 행했더니.
정말 주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복을 주시고 평화를 주셨음을 맛보고 확인하고 난 다음에.
이것을 유언으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마지막 당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덧붙이는 말이. 7절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7절 말씀을 보면.
"너희 중에 남아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7절)"고 되어 있는데.
재밌는 것은. 이 일들이. '점층법으로/점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1) 너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민족들 가운데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2) 혹시라도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 민족들 가운데 들어갔다면.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그들과 가까이 하지 말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며.
3) 혹시라도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들 가운데 들어가고.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불렀다면.
그들의 이름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며.
4) 혹시라도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들 가운데 들어가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이방 신들 앞에서 맹세하였다면.
오늘 하나님 앞에서. 그것들을 섬기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어디까지는 해도 되고. 어디까지는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너희가 잘못하고. 죄를 범하거든.
<지금이라도 당장 돌이키고. 지금이라도 당장 그곳을 떠나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죄는 우리를 빨아들이는 늪과 같아서.
한번 빠지고 거기 허우적 거리기 시작하면.
더 깊은 곳으로/더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기 때문에,
우리가 헤어나올 수 없는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기 전에.
하루 속히 그곳을 나오고. 도망칠 것을.
오늘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잇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는. 마지막 유언을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만약 너희가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주께서 너희의 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서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될 것이라(11-13절)" 말씀하시는데.
"그 끝은 오늘 우리의 파멸이 될 것이라(13절)"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선한 말씀만" 이루시는 분이 아니라.
"불길한 말씀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배반하며.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화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19장 5절과 6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19:5-6)"고 말씀하시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창조주 하나님/구원의 하나님이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가 하나님 한분만" 섬기기를 바라시며.
오늘 우리가 딴 데 마음을 품고. 딴 곳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오직 주님만" 섬기길 바라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이와 같은 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딴 마음을 품고. 다른 곳에 기웃거리는.
그런 이중적인 태도로. 이중적인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좋겠다.
혹시 오늘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지거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할 줄 아는.
그런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입술로만 섬기고. 마음으로만 공경하는.
그런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정말 삶으로 공경하고. 삶의 예배를 맺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사랑하는 형제 자매를 향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과 그분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란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주님 안에 거하며.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하루. 그런 복된 공동체 되길 원하며.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귀한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며. 귀한 믿음의 유산을 증거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복된 하루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나의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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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2:21-34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를 겪곤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다.
어제 우리가 살펴봤던 것처럼.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 인근에 제단을 마련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 10개 지파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몰려들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일촉즉발/위험한 상황 가운데 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본문. 여호수아 22장 12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얘기하죠.
"이스라엘 자손이 이 소식을 듣고.
회중이 실로에 모여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그만큼 이스라엘은 심각한 어려움/위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재밌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숙한 태도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먼저. 비느하스를 비롯한. 이스라엘 대표단의 모습이 그렇다.
그들은 분명.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며. 분노하며 그 길을 달려갔는데.
막상 그 자리에 도착해서는. 신중하게/겸손하게 반응을 한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이 그렇다.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고.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거역하고자 하느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을 향한. 판단과 정죄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형제자매를 향한. 판단과 정죄의 마음으로 하였다면.
그들은 자초지정을 묻고. 뜻을 묻지 않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바로 칼날을 들이대고. 목숨을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들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돌이키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여호수아 22장 17절을 보면.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며.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느냐?"고 다독이며.
오늘 너희의 삶이. "아간과 같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 그랬더니 이 얘기를 듣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제단을 쌓은 것은.
우리의 뜻을 돌이켜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려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되기 위한 길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혹시라도 훗날. 우리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멀어졌을 때.
오늘 우리의 삶이. 서로에 대해 아무런 상관이 없고 무관심해졌을 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상기하기 위해.
그래서 제단을 지었음을 얘기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다른 어떤 뜻과. 다른 목적이 없음을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다.
3) 그랬더니 이 얘기를 듣는. 이스라엘 10개 지파의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그들의 뜻을 받아들인다.
그들의 얘기가 통했던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전달된 것이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향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때로는 오해를 쌓고 원망이 섞인 일들을 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서로를 향한 마음/진심을 받아들이고.
서로 헤아려주고. 서로 용납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서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각자 자기의 일들을 하게 되는데…
이 일은 이스라엘 가운데. 서로를 더욱 신뢰하고.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가 온 다음에. 땅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이. 위기와 어려움의 순간을 넘기고 난 다음에.
그들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돈돈해지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크고 작은 오해가 쌓이고. 형성되기 마련인데.
오늘 우리 공동체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결하고 있을까?
혹시 오늘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수면 아래로 밀어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계라는 것은. '긁어 부르럼'이니까.
괜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이스하게. 괜찮은 척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측면에선.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항상 좋고.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처럼.
오늘 우리의 관계가. 서로 안에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냉랭하게 흘러갈 때.
오늘 우리는. 살아있는 관계/살아있는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관계/죽은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가운데. 죽은 관계/냉랭한 관계/오해와 얼룩으로 점철된 관계가 있다면.
오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형제자매의 마음을 듣고. 그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데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형제 자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의 얘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내 마음을 찌른다 하더라도.
겸손히 그 얘기를 듣고. 반응할 수 있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고.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YOU Message / 너 때문에…" 라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마음을 성숙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우리의 마음/진심을 전달하는.
"I Message / 나의 언어"로 반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땅을 떠나기 전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살아있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넘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공동체가. 위기와 어려움의 순간을 넘어서서.
서로를 더욱 돈독히 세우며. 서로를 더욱 돈독히 사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진실한 마음과.
서로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진실한 귀와.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진실한 눈과. 진실한 은혜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주님 앞에. 겸손히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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