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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1:1-25

'여호수아'를 마치고. '누가복음'으로 넘어간다.
누가복음 2년 전에. 6개월 동안 쭉 살펴본 적이 있지만.
오늘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고.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시길 소망하면서 말이다.

마치 누가복음 1장에 기록된. 누가의 마음과 같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붓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한 것은. 그걸로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을 들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새롭게/더 충만히 전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오늘 본문 3절과 4절을 보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얘기하는데.
그 이유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데오빌로 각하가. 그것을 모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구원을 얻은 사람이고.
이 길 가운데. 우리 주님과 동행하며. 그와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쓴다.
왜냐하면. 데오빌로 각하가. 하나님 나라 복음 안에서.
더 풍성한 기쁨을 누리길 바랐기 때문이다.

마치. 요한복음 10장 10절의 고백과 같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오늘 누가의 고백도. 그렇지 않을까?

그는 데오빌로 각하가.
하나님 안에서. 더 풍성한 기쁨/복음을 누리길 바랐으며.
그렇기 때문에. 누가는. 다시 펜을 드는.
그 수고와 번거러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의 기쁨을 얻고 즐거워하는 것이.
누가 자신에게도. 더 큰 기쁨이 되고 소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데오빌로 각하는. 얼마나 복되고. 소중한지 모르겠다.
누가가 자기를 위해서. 이 모든 일의 근원부터.
처음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 복음을 정리해 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소식인가.


하지만. 이 일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누가 자신이다.
누가 자신이 이 일의 가장 큰 복을 누렷으며.
누가 자신이 이 일의 가장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복음을 연구하고 전하면서.
누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큰 깨달음과 기쁨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6~7년 전부터. 말씀 묵상글을 계속 적고 있는데.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말씀 묵상을 좀 더 손쉽게 가르치고.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일이 나의 자산이 되고. 유익이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위해서 이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서 이 일을 하게 된다.

말씀 묵상을 하고. 그것을 글로 적는 과정이.
나에게 쉽지 않고. 고된 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고 유익을 누리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이 일의 일차적인 수혜자는.
바로 내 자신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마 누가도 같은 생각/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데오빌로 각하를 위해서.
그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복음의 감격이.
누가 안에서 더 커지고.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가는. 누가복음을 쓰고 난 다음에.
사도행전의 기록까지 거침없이 쓰게 되는데.
나는 오늘 이것이. 나의 삶의 기도가 되고.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번 묵상한 말씀이라고 하여.
그 안에 갇히고. 그 안에 잠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말씀 묵상을 하면 할수록. 그 안에 있는 신비와 비밀들이.
오늘 내 안에 훨씬 더 크게 넘치고.
오늘 내 안에 훨씬 더 풍성히 흘러넘치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과. 나의 묵상들이.
이전의 경험 속에 갇혀있는. 그런 나의 나눔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내 속에 역사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복음의 풍성한 비밀을 알려주시고. 그 복음의 풍성한 생명력으로.
오늘 나의 영혼을 자라게 하시고. 오늘 우리 공동체 가운데 복과 은혜를 끼치는.
그런 나의 삶.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누가복음 묵상을 새롭게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 삶에 소망. 내가 바라는 한 분.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한 없는 사랑. 풍성한 긍휼. 예수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완전하신 예수 새롭게 하시네.
연약한 내 영혼 온전하게 되리

예수 닮기를 예수 보기를. 예수만 높이길 내가 원하네.
내 평생 소원 예수 닮기를. 예수만 닮기를 내가 원하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우리의 눈을 밝히시고. 우리의 생명력을 더하시는.
그런 풍성한 은혜. 그런 복된 은혜 흘러 넘치게 해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예수 닮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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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4:19-33

예레미야 17장 9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이것은 그만큼. 우리 마음은. 쉽게 상하고 변질됨을 가리킨다.

인간의 약속은 그만큼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하고.

그만큼 우리는 약하고. 또 쉽게 변절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리라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렇게 변하리라곤. 잘 생각도 하지 않고. 잘 믿지도 않는 것 같다.

베드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예수께서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을 말씀하실 때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데.
베드로는 사람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나 보다.
아니. "다른 사람 마음은 몰라도. 내 마음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나 보다.

하지만 그날 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베드로가 우리 주님을 배신하고. 멀리 떠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던 베드로가.
우리 주님을 저주하였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저 사람만은 절대로 모른다"고 하였다.

베드로만 그랬던 게 아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제자가. 우리 주님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우리 자신을 믿고. 맹신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잘못된 생각. 잘못된 착각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질되고. 상하기 마련이며.
우리는 사람들 앞에. 또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배신하고. 도망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여호수아도. 이 사실을 잘 알았나보다.
그래서 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수 24:16)"고 맹세할 때에.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너희가 능히 여호와를 섬기지 못할 것이라(19절)"고 악담(?)을 한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담아. 진심어린 고백을 하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충성스럽게/진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는데.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초를 치고.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가?
어찌보면 여호수아는. F가 아니라 완전 T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냉정히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쉽게 믿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만불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에.
우리가. 우리의 다짐을 믿고. 허무맹랑하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그 다짐을 실천하고. 그 약속을 구체적으로 구현해 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그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이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 때문에 계속해서 실랑이를 하게 되는데.
선배 가운데 한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핸드폰 사주기 전에는. "핸드폰을 사달라"라는 것 때문에. 아이들과 싸우게 되는데.
핸드폰을 사주고 난 다음에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문제 때문에 아이들과 싸우게 된다.

웃으면서 한 농담이었지만. 그 가운데 뼈가 있지 않을까?
오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면.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힘과 능력이 없다.

우리가 핸드폰을 끊는 능력보다.
핸드폰이 우리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훨씬 더 크고.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가능성보다.
우리가 죄와 싸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게.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고 말하였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

그렇기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세겜에 모여. 언약식을 치르고.
그 가운데 큰 돌 하나를 세우게 되는데…

아마도 그 안에는. 그들이 섬기던 이방 신들의 모양/형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도 치울 수 없는 곳"에. 큰 돌을 세우고.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 큰 돌을 두고.
오늘 우리 가운데 있던. 이방 신들과. 이방 형상을 그곳에 버리고.
그곳 문을 닫고.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과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실천을 하고 있을까?

예배를 드릴 때면. 또 기도를 할 때면.
우리의 감정과 생각에 취해서.
그냥. 헛된 다짐과 약속을 일삼으며.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주의 약속을. 마음으로 받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또 애쓰는 삶을 살고 있을까?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그런 지혜로운 자. 그런 슬기로운 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이.
주의 말씀을 듣고. 즐겨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영원토록 주를 찬송하리라.
소리 높여 주께 영광 돌리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세상 염려 내게 엄습할 때에.
말씀으로 힘써 싸워 이기며.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성령의 검을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와 진리의 띠로. 말씀 위에 굳게 서리라.
성령의 검을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믿음의 반석 위에 집을 짓고.
믿음의 반석 위에 뿌리를 내리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은혜 가운데. 담대히 살아가길 소원한다.

(feat.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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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4:1-18

뮤지컬 '영웅'을 보면.
제일 첫 장면에. '단지동맹'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 그라스키노 인근에 있는.
자작나무 숲에서 한 결의인데.
안중근과 그 동지들은.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를 제거하기롤 함께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결의에 대한 다짐으로.
왼손 약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썼는데.
그들은 그 손가락을. 단지/항아리에 모아 보관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단지동맹'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같은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어제부터 우리는.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 설교를 듣고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여호수아의 다짐과 그 충성은.
정말 하늘을 찌를 것만 같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며.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열거하는데.
그의 고백이나. 다짐 속에는.
조금의 거짓이나. 보탬도 없는 것 같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담대함과 진실함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오늘 우리 인생을 이끌어 오셨다는 얘기를 계속하는데.
그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어진다.

1)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강 저쪽에서 이방 신을 섬겼을 때.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해 오셨고.
2) 아브라함이 죄를 짓고. 약속의 말씀을 어길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쭉 이어오셨고.
3) 이삭의 때나. 야곱의 때에도.
하나님은 신실하게. 여기까지 우리 삶을 인도해 오셨다고 얘기한다.

4) 그래서 출애굽할 때에.
애굽 사람들이 우리를 뒤쫓아 올 때에.
주께서 당신의 크신 능력으로. 애굽 사람들을 물 아래 수장하게 하였으며.
5) 출애굽 광야길에서. 아모리 사람들이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올 때도.
주께서 당신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6) 모압 왕 발락이. 선지자 발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그들에게 화가 있기를 기도하였지만.
주님은 그것을 바꾸어. 선으로/축복으로 오늘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며.
7) 오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기까지.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한번도 우리를 떠나지 않았음을.
계속해서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 13절을 보면.
"너희의 칼이나. 너희의 활로써. 이같이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너희가 그 가운데서. 심지도 아니하고. 수고도 하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게 하셨다(12-13)"고 얘기하는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주님의 축복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 한분/여호와만 섬길테니(15절)".
“오늘 너희는 어떤 자세/스탠스를 취할 것인지. 분명히 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4절과 1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여호수아 5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 모습과 유사해 보인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를 찾아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수 5:15)”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발에서 신을 벗고.
여호와께 순복하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도 이렇게 대답한다.

16절부터 18절까지를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여기까지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주께서 한결같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셨으며.
주께서 이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모든 아모리 족속들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주시고. 우리를 지켜주셨으니.
<그러므로 우리도>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며.
<그는 우리 하나님 되심>이라(16-18절)"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이.
"우리가 결단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언제. 결단코 주님을 섬긴 적이 있던가.

 

우리가 알다시피. 여호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
그들은 그 길로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을 했으며.
유월절 전날.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베드로는 그날밤. 바로 주님을 배신하고. '나 몰라라' 하고 주님을 도망쳤다.

 

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다.

"나는 결단코 주님을 져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그들이 지키지는 못했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하셨고.

한결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돌보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셨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물어보시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를.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기까지 인도해 왔는데.
너는 앞으로 너의 생을 어떻게 드리길 원하냐?
너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답하겠느냐.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에게 반역하며.
머뭇머뭇거리며. 기웃기웃거리던 때가 있었는데.
너희도 그때 그 모습처럼. 나를 반역하며 떠나는 삶을 살겠느냐?"

하나님의 이런 물음 앞에.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섬기고 싶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단코> 주님을 버리지 않고.
내가 결단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 돌아오고 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주님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고 계실 때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던 사도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주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을 따르기 원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실수하고 넘어지는 때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를 따르길 원한다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때론 하나님을 배반하고. 때론 하나님을 떠날 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 돌아오고. 다시 주께 귀속되는.
그런 우리 공동체/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시간이 흐르고. 삶이 흐를수록.
오늘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더 단단해지고. 튼튼해짐으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또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주께서 지난 시간 동안. 신실하게 우리 삶을 이끌어오심"에 대한.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

지금까지 오늘 우리 삶을. 신실하게 인도해 오신 우리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 삶도. 신실하게/진실하게 인도해 주시길 바라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 앞에. 진실함으로. 온전함으로 주를 섬기며.
오직 주님만 사랑하며. 오직 주님만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 드리길 원한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의 신실함을 찬양하며. 그분의 신실함을 따라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하나님 한번도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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