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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25 :: 2025.02.26(수) 눅 7:1-17
눅 7:1-17
고대 사회에서. 종은.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에 불과했다.
한번 쓰다 망가지면 버리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고치기 위해. 수고를 하고. 품을 들이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었다.
마치. '설국열차'에 나오는 한 장면과 같다.
기차를 움직이기 위해선. 부품이 필요한데.
그 부품이 망가지고 없어지니까. 그 아랫칸에 꼬마 아이를 집어넣고.
기차를 돌리도록 하는 모습.
그렇게 종은. 이 세상을 위한. 희생 제물이나 소모품에 불과하였다.
그에게 인격이나 존엄이란. 사치에 불과했고.
그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마땅한. 당연한 길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세상의 상식과 그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오늘 본문 2절에 나오는. 로마 백부장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얘기하오는데.
이에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를 찾아간다.
자기가 직접 가는 것이 아니다.
1)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그 종 구해주기를 간청하고.
2) 백부장의 벗들을 보내어. 자기 집에 들어오지 말 것을 간청한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종이 뭐라고' 대체 백부장이 이런 수고를 감당한단 말인가.
그렇기에. 유대 장로와 백부장의 친구들도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깟 종 하나 살리겠다고. 내가 예수님께 가서 싫은 소리를 해야하나"
유대 장로 입장에서는. 내가 예수께 가서. 그에게 굽신굽신거리는 것이.
이내 못마땅하게 느껴졌을 것 같고.
백부장의 친구 입장에서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우리가.
예수께 가서 도움을 청하고. 그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 같다.
차라리 용한 의사한테 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낫지.
왜 예수님께 가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 예수님께 엎드려야 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백부장은. 손사레를 치며 말한다.
"이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 하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그는 분명히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행정 구역상으로는. 이스라엘/유다에 속한 사람이지만.
그의 신분은 하나님/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백부장은 알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부장은.
"당신을 직접 만나고. 당신을 직접 뵈올만한 자격이 없어서" 그래서 직접 주님께 나아가지도 못했다고 말하고(7절)
"당신을 우리 집에 모시고. 당신을 맞이하기에는. 내가 한없이 작고 부족하여서.
그래서 당신을 맞아들이기도 어렵다(6절)"고 말한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으니.
그저 말만 하면. 내가 그 말에 순종하고. 겸손히 따르겠다(8절)"고 얘기하는데.
이 얘기를 듣고. 우리 주님이 깜짝 놀라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가운데. 이와 같은 믿음을 본 적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 앞부분을 보면.
그 동안 예수님을 향해. 수많은 사람이 나아왔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가. 예수를 향한.
존경과 두려움. 그를 향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던가.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보다.
그분의 손에서 나오는. 콩고물/능력 얻기를 간절히 바랐었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술상자의 바구니처럼. 한 번 쓰다 버려지기도 했었다.
"내 필요가 있을 때"는. 그분을 간절히 찾고. 그분을 간절히 바라지만.
"내 필요가 다 채워지면" 언제든지 그 분을 버리고. 언제든지 그분을 대체할 수 있는.
종/노예처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백부장만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존경과 위엄. 두려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함부로 대하거나. 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깍듯이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이에 예수님은. 이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9절)"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두 가지를 같이 생각해 보게 된다.
1) 오늘 이 백부장은. 자기의 사랑하는 종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들이고. 자기의 생명을 들여서. 이 아이를 고치기 원하는데.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그 당시 고대 근동 사람들이. 종을 생각하기를.
"그는 쓰다가 버려질 소모품/대체재"로 생각했는데.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그를 사랑하고. 아껴서. 이 세상 무엇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든지 쓰다 버리는. 폐기물/소모품으로 생각하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감탄과 감격을 잊어버려서.
그를 하대하고. 종 다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할 때가 있는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부장이 이 하인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어떤 수고와 어떤 노력도 아끼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것이.
나의 종/나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존귀히 여기고. 그를 존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우리 삶 되었으면 좋겠다.
2) 그래서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내가 당신을 감당할 수 없고. 내가 당신을 함부러 할 수 없어서"
내가 당신을 맞이하러. 직접 나아갈 수도 없고.
당신을 우리 집에 들이기도 너무 민망하다고 했는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와 같은 마음이 회복되면 좋겠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나는 당신의 신들매를 감당할 수도 없는데.
내가 어찌하여 당신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감탄.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주와 동행하고. 주와 더불어 살아감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높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찬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또 간구하게 된다.
"주님. 오늘 백부장이.
이 하인을 사랑하고 귀히 여겼던 것처럼.
오늘 우리 안에도.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백부장이.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주를 두려워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주와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feat. 주의 아름다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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