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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03 :: 2025.02.04(화) 수 22:21-34

수 22:21-34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오해를 겪곤 한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렇다.
어제 우리가 살펴봤던 것처럼.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 인근에 제단을 마련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 10개 지파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몰려들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은. 일촉즉발/위험한 상황 가운데 놓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본문. 여호수아 22장 12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얘기하죠.
"이스라엘 자손이 이 소식을 듣고.
회중이 실로에 모여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그만큼 이스라엘은 심각한 어려움/위기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재밌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숙한 태도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1) 먼저. 비느하스를 비롯한. 이스라엘 대표단의 모습이 그렇다.
그들은 분명.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며. 분노하며 그 길을 달려갔는데.
막상 그 자리에 도착해서는. 신중하게/겸손하게 반응을 한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이 그렇다.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고.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거역하고자 하느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을 향한. 판단과 정죄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형제자매를 향한. 판단과 정죄의 마음으로 하였다면.
그들은 자초지정을 묻고. 뜻을 묻지 않았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바로 칼날을 들이대고. 목숨을 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들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돌이키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그와 같은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여호수아 22장 17절을 보면.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며.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했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느냐?"고 다독이며.
오늘 너희의 삶이. "아간과 같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2) 그랬더니 이 얘기를 듣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지파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제단을 쌓은 것은.
우리의 뜻을 돌이켜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려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되기 위한 길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혹시라도 훗날. 우리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멀어졌을 때.
오늘 우리의 삶이. 서로에 대해 아무런 상관이 없고 무관심해졌을 때를 대비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상기하기 위해.
그래서 제단을 지었음을 얘기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다른 어떤 뜻과. 다른 목적이 없음을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다.

3) 그랬더니 이 얘기를 듣는. 이스라엘 10개 지파의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그들의 뜻을 받아들인다.
그들의 얘기가 통했던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전달된 것이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향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
때로는 오해를 쌓고 원망이 섞인 일들을 하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서로를 향한 마음/진심을 받아들이고.
서로 헤아려주고. 서로 용납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서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각자 자기의 일들을 하게 되는데…
이 일은 이스라엘 가운데. 서로를 더욱 신뢰하고. 믿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가 온 다음에. 땅이 더욱 단단해지는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이. 위기와 어려움의 순간을 넘기고 난 다음에.
그들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고. 돈돈해지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크고 작은 오해가 쌓이고. 형성되기 마련인데.
오늘 우리 공동체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결하고 있을까?

혹시 오늘 우리는. 이 어려움들을.
수면 아래로 밀어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계라는 것은. '긁어 부르럼'이니까.
괜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이스하게. 괜찮은 척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측면에선.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항상 좋고.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처럼.
오늘 우리의 관계가. 서로 안에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냉랭하게 흘러갈 때.
오늘 우리는. 살아있는 관계/살아있는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관계/죽은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가운데. 죽은 관계/냉랭한 관계/오해와 얼룩으로 점철된 관계가 있다면.
오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은혜와 사랑을 부어주시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형제자매의 마음을 듣고. 그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데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형제 자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의 얘기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내 마음을 찌른다 하더라도.
겸손히 그 얘기를 듣고. 반응할 수 있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고.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YOU Message / 너 때문에…" 라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마음을 성숙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우리의 마음/진심을 전달하는.
"I Message / 나의 언어"로 반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이 땅을 떠나기 전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살아있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넘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공동체가. 위기와 어려움의 순간을 넘어서서.
서로를 더욱 돈독히 세우며. 서로를 더욱 돈독히 사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진실한 마음과.
서로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진실한 귀와.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진실한 눈과. 진실한 은혜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주님 앞에. 겸손히 의탁하여 드리길 원한다.

(feat.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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