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5:22-35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할례는 강요하지 않되.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 것'을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바사바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가 채택되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였고.
사과의 말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전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기뻐하였고.
유다와 실라는 여러 말로. 그들을 격려하고. 굳세게 하였다.
갈등/문제가 해결되고. 다시 평안을 되찾게 된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특별히 2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1) 먼저는. 두 교회 사이의 관계다.
그들은. 위치도, 신분도, 구성원도 다른. 독립적인 교회였다.
하지만 두 교회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인격적인 소통이 가능하였고. 서로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수평적이면서. 동시에 질서/권위를 존중하는. 수직적인 교회였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는.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자라갈 수 있었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이러하면 어떠할까?
그동안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권위적이었다.
담임목사와 당회의 권한이. 절대적으로 컸으며.
성도들은. 어떤 물음이나 질문도 제기할 수 없었다.
그게. 질서라고 가르쳤으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부작용으로.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권위에 대한 도전/해체가 일어났다.
'내가 결정하고.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이다.

이 양극단이 싸우고 있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중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Voice. 목소리만 높이며. 서로를 비난한다.
'승승(win-win) 게임'이 되어야 하는데.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의. 경험과 지혜를 듣지도 못하고.
변화와 도전의 기회마저.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인격적이면서. 동시에 권위가 살아있는' 공동체/관계가 필요하다.


2) 말씀을 보면서. 두번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바사바 유다"에 대한 존경이다.
학자들은. 이 사람이. 사도행전 1장 23절에 나오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과 동일인물이라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제비뽑기 실패(?)로.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중직자 투표에서 탈락"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든 주님 나라를 세우는데만 열중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교회의 신망을 얻을 수 있었으며.
안디옥 교회에. 대표단으로 파송된다.
그만큼. 그의 덕과 인품. 그의 순결함과 진실함은 컸던 것 같다.
그런. 유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길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와 우리 공동체가.
유다의 모습과 같이. 주님 나라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 되길 기도한다.
이를 통해. 깨어진 교회/사회가 하나되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 높임받는.
그런 아름답고. 귀한 공동체 되길.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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