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9:15-22
우리는. ‘핏덩이’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어머니의 해산의 수고로 말미암아.
그의 피 흘림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단 하나뿐인 생명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된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명은 그저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로 말미암아.
그의 피 흘림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생명을 얻는 일에는. 목숨을 담보로 한다.
쉬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가며. 변화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명을 얻는 일만큼. 보람되고 기쁜 일도 없다.
아이를 낳기까지. 정말 죽을 만큼 큰 고통이 따르지만.
그 ‘핏덩이’ 아이를 품에 안을 때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
실로. 아린이가 처음 때어났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아이가.
엄마의 젖꼭지를 힘차게 빠는 것을 바라볼 때.
얼마나 감격스럽고. 신비하던지.
그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너와 나는. 다른 생명/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핏줄/한 생명임을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우리는. 남이 아니라. 하나이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숨 쉬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길 원하신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던 것처럼.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수고/고통/자기희생이 필요하며.
그 수고를 통해 얻게 된. 사랑의 열매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이다.
바라기는 나와 우리 공동체가.
생명을 낳고/생명을 전하는. 그런 귀한 공동체 되길 소망한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는 것처럼(히 9: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의 본을 따라.
이 길을 함께 걷길 소원한다.
우리는. 그의 피로 거듭난. 존귀한 주의 자녀들이다.
(feat. 예수님 그의 희생 기억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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