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9:1-13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하여. 그 약속을 지키려 하였다(삼상 20:15).
사람을 불러. "사울의 집에. 남겨진 사람이 없는지" 수소문 하였고.
그 결과.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므비보셋은.
아버지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도망치다 크게 다녔기 때문에.
두 다리를 절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았을 지도 모른다.
므비보셋이. 사울 왕가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혹여라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근데. 오늘 다윗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다윗 궁으로 끌려가던. 므비보셋 입장에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낭패다. 이제 끝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행여라도. 두 다리가 멀쩡했다면.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시도라도 했을 텐데.
오늘 따라. 자신의 처지가. 더 야속하고. 한탄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윗도. 그런 므비보셋의 마음을 읽은 것 같다.
그렇기에. 다윗은. 므비보셋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난 다음. 다윗은. 므비보셋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이어간다.

"나는. 너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서. 네게 은총을 베풀고 싶다.
너의 할아버지. 사울 임금께서 가지고 계시던 토지를.
너에게 모두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언제나 나의 식탁에서. 함께 먹도록 하여라(7절)."

충격이다.
므비보셋 입장에선. 다윗의 궁에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이제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고 나니. 그야 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그렇기에. 므비보셋은. 다윗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나 다름 없는 저를.
임금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8절)"

근데. 이 말이 참 인상적이다. 어디서 많이 본 말이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너의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주실 때.
다윗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누구이며. 또 내 집아니 무엇이기에.
주께서. 나에게 이런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니까.
이것이 어찌. 사람을 대하는 일상적인 방법이겠습니까…(삼하 7:18-19).

근데. 오늘. 다윗이 하나님께 고백했던 말이.
므비보셋의 입에서 똑같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2가지를 생각해본다.

첫번째. "은혜는 흘러가는 것이구나".

그렇다.
다윗은. 자신의 어떠함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시 8:4)"라고.
주님께 반문하였다.

그렇기에.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값없이. 그저 흘려보내고자 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은총을 네게 베풀어 주고 싶다(3, 7절)"는 말을 반복하며.
이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은혜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므비보셋도.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저를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므비보셋 입장에선. 하염 없이 눈물만 흐르고.
그저.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은혜가. 그를 감동케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은혜는 흘러야 한다.
나만 복을 받고. 나만 행복할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세상 모든 만민이 복을 받고.
우리는. 그분의 복의 통로/근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보며. 첫번째 드는 생각이고.


두번째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 므비보셋과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오늘 성경은. 므비보셋을 가리켜. '두 다리를 저는 자'라고 말한다.
그는. 다윗 왕가의 원수. 사울의 손자였으며.
어찌보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비참한 인생. 깨어진 인생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왕의 식탁에 참예케 한다.
이전 일들을 묻지 않고. 책임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다른 왕자들과 다름 없이(11절)".
왕의 식탁에 앉아. 그를 마주하며. 늘 풍성한 식탁을 나눌 수 있었다.
얼마나 복되고. 귀한 은혜인가.

근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사실. 우리는 깨지고. 상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존전 앞에 머무를 자격도 없고. 그분의 은혜를 누릴 자격도 없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고아'라 부르지 않으시고. '아들/딸'이라 불러 주신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향해. '죄인/창기'라 부르지 않으시고.
도리어 '의인/신부'라 불러 주신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의 이름을 바꾸시며.
우리를 택하시고. 용납해 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주님의 은혜 앞에서. 달리 할 말이 없다.
내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나를 생각하시며.
내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나를 돌보신단 말인가.
그저 목놓아 울며. 주님 앞에 흐느낄 뿐이다.


그래서. 이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데. 계속 마음이. 먹먹해질 뿐이다.
찬양과 말씀이 계속 생각나고.
주님 앞에. 그 은혜를 고백하며. 계속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은혜를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아침.
나의 작은 기도보다.
사도 요한의 이 고백으로.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고 싶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

이것은.
1번. 2번. 그냥 스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우리가 곱씹어 생각하고. 묵상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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