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7:13-39

성전 현관에. 두 개의 큰 기둥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 기둥은. "야긴"이라 불렀으며.
왼쪽 기둥은. "보아스"라 불렀다.

"야긴"이라 함은. "주가 세우신다"는 뜻이며.
"보아스"라 함은. "그의 능력으로"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가 세우시고. 그가 이끄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이 되었고.
성전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은. 이 기둥을 보면서.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지.
다지 점검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길갈에 세운 12개의 돌기둥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요단강 바닥에 있던 12개의 돌을. 길갈에 세운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것을.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개의 기둥으로.
이것을 상징화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는. "요긴과 보아스"에 담긴 이름의 뜻이며.
두번째는. 이 기둥을 만들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던 "후람"에 관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오늘 우리의 인생은.
"야긴과 보아스"의 삶을 이루어야 한다.

어찌 우리가. 우리 인생을 스스로 세우며.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어떻게 우리 인생을 돌봐 갈 수 있겠는가.
주께서 세우시고. 주께서 돌보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
"야긴과 보아스"의 은혜가 필요하며.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 고백이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이 고백을 제일 먼저 한 사람이.
이 기둥을 직접 설계하고 만든. "후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두로에 살던 혼혈인으로서.
이스라엘 출신의 어머니와. 두로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고.
어머니와 단둘이. 이방땅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이방 땅에서.
그것도 이스라엘 출신의 과부가.
아들과 함께 생계를 유지하며. 지낸 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꿋꿋히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이어왔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증오하고 멸시하는 이방 땅 가운데.
그들은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그의 나라를 이뤄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들의 신앙 고백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놋 기술에 관해서는. 그가 두로 지역에서 제일 가는 장인이 되었꼬.
두로 지역 사람들도. 그에게 많은 일/작품을 의뢰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문이. 솔로몬의 귀에 들려왔다.
"두로에. 후람이라는 사람이 있대요.
그가. 놋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 제일이예요.
근데. 그 사람이 이스라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아들이라고 하네요.
그가 비록 이방 땅에 살고 있지만.
거기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지내며.
도리어. 거기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내고 산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성전 공사의 마지막은.
그 사람에게 부탁하면 어떨까요?
그가 조국 이스라엘의 성전 공사하는 일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요?"

그렇기에. 솔로몬은. 사람을 보내어. 후람을 데려왔고.
그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내려와.
주의 성전을 짓는 일에. 자신의 모든 열과 성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후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가.
"야긴과 보아스"라는 그 신앙고백도 의미있지만.
그의 삶과 지나온 여정이. 이것을 증명하고 고백하기에.
후람의 삶과 입술을 통해 고백되는 "야긴과 보아스"가.
더욱 감동적이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서.
바라기는. 오늘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찌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 고백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바뀔 수 없는.
자명한 진리이며. 명백한 우리의 신앙고백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 단지 우리의 입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로 알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것을 담보하고.
정말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울리는. 살아있는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후람의 삶을. 오늘 우리 마음에 새기길 원한다.

그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며.
그의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며.
그의 소망이. 오늘 우리의 소망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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