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4:1-20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사람들은 늘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행여라도 이 일을 모면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나 길은 없는지."
그래서. 사람들은. 점쟁이를 찾아가서.
그들에게. 자신들의 미래에 관한 일을 묻곤 한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불안함/두려움인 것이다.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기 아들 아비야가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되자.
아내에게 이런 말을 건낸다.
"실로에 가면. 아히야라는 예언자가 있소.
그 사람이 '내가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소.
그 사람이라면. 우리 아들이 어떻게 될지 알려줄 것이오.
그러니 당신이 가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시오."
여로보암 입장에선. 아히야를 직접 만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아히야가 자기에게 일러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니.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를 만날 수 있겠는가.
행여라도. 괘씸죄를 적용할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더니.
이제서야 연락하고. 복을 빌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괘씸해서.
복이 아니라. 저주를 퍼부을까봐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자기가 직접 아히야 선지자를 만나러 가지 않고.
자기 아내를 대신해서 보낸다.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변장한 것이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한들.
어찌 모든 것을 숨길 수 있겠는가.
도리어 하나님은. 여로보암과 그의 집안에. 엄중한 심판의 메세지를 던지신다.
특별히 오늘 본문 7절부터 16절까지를 보면.
주께서. 극단적인 말씀/표현을. 서슴치 않고 하시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너희 가문을 쓸어버리겠다.
그것도. 마치. 사람이 쓰레기를 깨끗이 쓸어버리듯이 쓸어버릴 것이다(10절)"
"성읍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개들이 먹어 치울 것이고.
성읍 밖에서 죽은 사람들은.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며.
도리어.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만 제대로 무덤에 묻히게 될 것이다(11-13절)"
얼마나 충격적인 말인가.
주께서. 얼마나 빡치셨으면(?).
"너희는 쓰레기 같은 존재이며"
"무덤에. 제대로 장사를 지내는 것만으로. 큰 복인줄 알아라"고. 말씀하시는 걸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읽으며. 이런 생각/아쉬움을 갖게 된다.
1) 만약. 여로보암이.
이제라도 하나님께 돌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2) 만약. 여로보암이.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고.
정정당당히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삶을 돌이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3) 만약 여로보암이. 자기 아들 아비야가 죽은 것을 본 다음에.
그때라도 주님 앞에 돌아갔다면. 주께서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4) 행여라도. 지금이라도 주님 앞에. 뉘우치고 반성하면.
주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셨을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냥. 인간적인 일말의 기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므낫세 왕을 향한 평가/반응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열왕기하 21장을 살펴보면.
므낫세 왕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악한 왕 가운데 한명이었다.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모조리 다 하였고.
그가 잘 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대하 33장은.
므낫세가 바벨론을 잡혀가고. 고통을 당한 다음.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회개한 기록을 담고 있다.
그러자 주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대하 33:10-13).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기 민망하고. 얼굴 낯짝을 들만한 용기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다리며.
주님 앞에 나아오길 간구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도 그러하길 기도한다.
때때로. 우리의 연약함과 모남과. 어그러짐과 상처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고.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이지만.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책망을 받으며.
때때로. 돌고도는 인생을 살아가며. 험난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당신 앞에 나아오며.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길 바라지 않으실까?
우리가 언제까지 주님의 얼굴을 외면하고. 숨어 지낼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며. 당신 앞에 나아간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는 흠이 많고. 연약하며.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지만.
이 시간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며. 당신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님.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구하며.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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