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5:1-32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을 하곤 한다.

"저놈은 대체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네.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와서. 이렇게 우리 속을 썩이는 걸까?"

그때마다 솔직하게 이런 마음이 들곤 한다.
"닮긴 누굴 닮아요. 둘 중에 한명 닮았겠죠.
엄마를 닮았거나. 아빠를 닮았거나. 둘 중에 한명 닮았겠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울 때면.
은연 중에. 나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과 선을 긋고.
아이들과 나를 분리시키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다.

어린 시절 나 또한. 똑같은 짓(?)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똑같이/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그렇기에. 마냥 아이들을 탓할 순 없다.
아이들에게. 그런 유전자를 물려준 것은. 바로 내 잘못이며.
내 꼬라지가/내 성정이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그대로 답습/흘러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유달리 내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것 같다.

"아담은. 자기의 형상. 곧 자기의 모습을 닮은 아이를 낳고(창 5:3)"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모습을 닮은 사람을 낳고. 길러왔는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을 낳고. 어떤 사람을 길러낼 것인가?

사람은 '글'을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본'을 통해. 배우고 자라가는 법인데.
나는 아이들에게/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삶보다 더 좋은 교보재는 없는 법인데.
오늘 나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또 지체들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남겨질 것인가?


그렇기에 이 아침.
주님 앞에 나아가며 이렇게 기도할 따름이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당신의 형상대로 지어주셨는데.
우리는. 나의 욕심과 나의 생각대로만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형상과 향기는 점점 사라지고.
내 욕심과 내 욕망만 남아가는 것 같습니다.
지체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그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 보다.
말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온전한 본과 따름을 통해 나타나는 것인데.
우리의 가르침과 배움은. 말과 글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우리의 삶이. 점점 활력과 생기를 잃어가고.
그저 이전의 것을 답습하고. 답보하는 수준에 머물러 가는 것 같습니다.
주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주님. 그런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것처럼.
나도 온 맘을 다해. 지체들을 섬기며 사랑하게 하여 주십시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 받으라"고 말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의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답게 빚어져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안에. '진실한 배움과 사랑'이 머물게 하여 주시고.
오직 우리 공동체가. '배움과 따름'이 있는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와 동행하며. 주와 연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고.
'예수 따름'의 기쁨과 소망이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은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그런 은혜 허락하여 주시길 소원하며.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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