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0:25-43
라반은 악덕업주였다.
두 딸을 빌미로. 야곱을 14년 동안 이용해 먹더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야곱에게.
"내 그대를 순수히 보내줄 수 없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야곱이 끝까지/단호하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라반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대신. 야곱과 한 가지 약속을 한다.
"모든 양 떼와 염소 떼 사이에서. 점이 있는 것과 얼룩진 것들만 야곱에게 주고.
나머지 것들은. 라반이 갖기로" 약속 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라반은. 악덕업주의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야곱에게 아무 것도 주고 싶지 않아서.
얼룩진 것과 점이 있는 것은. 야곱 몰래. 모조리. 자기 아들에게 줘 버렸다.
야곱은 빈털털이로 돌려보내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은.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려고. 수작/꼼수를 부린 것이다.
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어쩜 이렇게 파렴치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정말 라반은. 속임수의 대가인 것 같다.
이에. 야곱은. 한가지 미신적인 행동/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양들이. 물을 마시고 교미를 할 때.
그 앞에. 나무 가지들을 세워 놓는 것이다.
양들이 물을 마시며. 흰 무늬가 나있는 가지를 보면.
그들이. 점이 있거나 얼룩진 새끼를 낳는다는. 민간요법/전승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으로 생각해 보면 어떠한가?
이게 정말 믿을 만한/그럴싸한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뭇가지를 보는 것과. 새끼를 낳는 것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뭇 가지를 본 양들이. 얼룩진 것과 점이 있는 것들을 낳았다.
덕분에. 야곱은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
라반은. 야곱에게 아무 것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를 빈손으로/빈털털이로 집에 돌려 보내려고 했지만.
라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야곱의 계획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민간요법/전승 때문도 아니고.
이것이. 우연의 결과도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의 결과임을 말이다.
야곱이. 지난 14년의 시간 동안.
그렇게 쌔 빠지게 고생하고. 그렇게 험악한 세월을 보냈건만.
라반은. 그를 무시하고. 그를 하나도 살펴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주께서 그의 수고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아무도 몰래. 야곱의 것을 챙겨주셨다.
마치. 라반이. 야곱 몰래/아무도 몰래.
자기 아들에게 그의 몫을 챙겨주려고 하였던 것처럼.
하나님 또한. 야곱에게. 그의 몫을 챙겨주고. 그의 수고를 계수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른다.
실제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떻게든. 자기의 몫을 챙기고. 자기 앞가림을 하는 것이.
그것이. 미덕이고. 그것이 지혜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영부영 살아가다간. 눈 뜨고도 코를 베이는 세상이다.
속인 놈이 잘못이 아니라. 속은 놈이 잘못이고.
어떻게든. 자기 것을. 악착같이 챙기고. 싸우고 투쟁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메시지 앞에서.
때론 흔들리고. 정신이 아찔하기도 한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나도 그 속에 편승해서. 그들처럼 살아야 하나 싶어진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세상이. 우리의 수고와 섬김을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이. 우리의 수고와 섬김을 알고 계시며.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등 떠미려 한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이. 우리의 수고를 잘 아시기에.
주께서. 우리의 수고를 갚아주시고. 채워주실 것을.
야곱의 삶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보며.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때론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허비하고. 돌고 도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께서 그 과정 가운데. 개입하고 간섭하심에 감사하며.
또. 그 과정 가운데.
주께서 내 마음을 지키시고. 돌보심으로.
내가 낙심하고.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심에 감사하다.
주께서 내 삶을 잘 아셔서. 그래서 감사하고.
주께서 나를 당신의 아들/자녀 삼아주셔서. 그래서 감사하다.
그렇기에. 이 시간.
그 주님에 대한. 선한 기대와 갈망으로.
앞으로의 나의 삶 또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의탁한다.
때론.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될 지 알지 못하며.
때론. 사람들이. 우리의 걸음과 수고를 몰라줄 수도 있으며.
때론. 사람들이. 우리의 걸음을 속이고. 이용해 먹을지 몰라도.
우리의 삶을 잘 아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 앞에.
오늘 내 삶을 의탁하며.
주님 앞에. 온전한 신뢰와 감사로 나아가는. 나의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주님이 나를 잘 아셔서.
정말 참 다행이다.
(feat.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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