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9:13-30

야곱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라반이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 처음 보는 조카이지 않은가.
자기 피붙이. 자기 혈육이 눈 앞에 나타났는데.
어떻게 그를 외면하고.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라반은. 반갑게 그를 맞이하며. 그에게 입을 맞춘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자기 누이 리브가의 소식도 궁금하고.
모든 것이 궁금하고. 설레었다.
이것이. 그날 야곱을 처음 맞이하는. 라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반가웠던 마음은. 이내 걱정과 경계심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야곱이 아내/신부감을 찾으러 왔다는 말 때문이었다.

라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예전의 트라우마가 생각나는 듯 하다.
실제로. 몇십 년 전. 어떤 어르신이 찾아와서.
자기들에게 했던 말이 무엇인가?
"우리 주인이 아브라함인 것과. 그가 여기서 신부감을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근데. 오늘도 갑자기 야곱이라는 놈이 나타나서.
그때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내가 리브가의 조카라는 것"과.
"우리 어머니가 여기서 신부감을 하나 데려오라"고 했다는 말.

라반 입장에서는. 이 말이. 그때와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그런 측면에서.
라반과 그의 가족이 느꼈을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놈들이 전에도. 우리 누이 리브가를 데려가 놓고서.
이번에도 우리 딸을 데려가려고 해?
그때는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얼렁뚱땅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
그때.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루 아침에. 갑자기 생이별을 하고.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우리가 저 아이와 함께. 다만 며칠이라도.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시간을 보내게 해달라고 했는데(창 24:55).
그걸 매몰차게 거절해 놓고선.
이번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딸을 데려가려고?
절대 그럴 수 없지. 이번에는 절대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거야!"

그래서. 라반은.
"라헬을 아내로 달라"는 야곱의 말을. 일면 괘씸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야곱이. "제가 7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리겠다"는 것을.
"옳타구니!"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며.
"내가 이놈에게 본 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라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라반은 선을 넘었다.

먼저는. '7년 동안 나를 위해 일하면. 라헬을 주겠다'는 야곱과의 약속을 어겼고.
이 과정에서. 자기 행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자기를 위한 논리/궤변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오히려 라반은. 라반을 몰아붙이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뭔 잘못을 했어?
큰 달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니야!
만약. 니가 라헬을 정말 얻고 싶다면.
그렇다면. 레아와 먼저 정식 결혼을 치르고.
그 다음에. 라헬을 데려가도록 하게!

단! 조건이 있어!
그게 뭐냐면. 계약을 갱신하는 거지.
자네가. 지난 7년 동안 일을 했던 것처럼.
앞으로. 또 다시 7년 동안 일을 해야 되네.

억울하다고? 어이 없다고?
좋아! 그럼 내 선심 하나 쓰지.
전에는. '후불제'로. 7년 동안 일하고 난 다음에 라헬을 주기로 했다면.
이번에는. '선불제'로. 라헬을 먼저 주겠네.
대신 7년 동안. 다시 이 생활을 시작해야해!
넌. 절대로. 도망칠 수 없어!"


야곱 입장에선. 이 얘기가. 정말 억울하고 속상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라반의 얘기를 마냥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손절하자니. 지난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또.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찐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야곱은. 7+7로. 도합 14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해야했다.
이것이. 밧단아람에서 보낸. 야곱의 험악한 세월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이런 생각/질문을 하게 되었다.
"라반의 손 아래. 14년을 보내는 동안. 야곱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라반. 저놈의 시키. 나쁜놈이야!"라는 생각만 가졌을까?
아니면. "라반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았을까?"

만약. 전자였다면.
이 시간은 정말. 아무런 짝에도 쓸모 없는.
그야말로 "무"와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라반의 모습 속에서. 속이는 자로 살아온. 자신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
"내게 왜 이런 일이 있는지.
하나님이 이 시간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야곱이. 듣고/보고/깨달을 수 있었다면.
야곱에게 이 시간은. 허송 세월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돌아보고.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오늘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우리는. 형제자매의 허물과 연약함을 바라보며.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비판하기 좋아하는가.
이리 까고. 저리 까고. 이리 판단하고. 저리 판단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오히려 주님은. 이 시간을 통해.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의 연약함과 허물을 없는지.
그것을 살펴보기 원하신다.
그것이. 우리의 인격이 성숙하고. 성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그 주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면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모습이.
고집스럽고. 표독하게 바뀌어 가지 않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모습이.
주님 안에서 부드럽고. 유연한 마음을 가진. 그런 우리가 되면 좋겠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할 때.
그 손가락 하나는. 상대방을 가리키고 있지만.
나머지 네 손가락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이 분명하고. 변함없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숙해 갈 수 있다.

(feat. 주의 옷자락 만지며(주 발 앞에 무릎 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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