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0:1-23
오늘 본문을 보면.
'꿈꾸는 자' 요셉이. 사람들의 꿈을 풀어주며.
사람들의 꿈을 해몽해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오늘 말씀을 보며.
내 마음에 부딪혀 오는 것은. 6절 말씀이다.
"다음날 아침. 요셉이 그들에게 갔는데.
요셉은 그들에게. 근심스런 빛이 있음을 보았다."
요셉이. 옥에서. 환관장들의 얼굴을 살펴보던 중에.
그들의 얼굴이 이전과 다름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요셉은. 그들에게.
"오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하고 묻게 된 것이다.
근데. 이 일이 언제 있었는가?
1절을 보면.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다시 말해서. 요셉이 열심히 살다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모함을 받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요셉에겐.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이렇게 살아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마음으로.
인간에 대한 환멸과 염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 믿음 안에서. 바르고 정직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근데. 이 과정 속에서. 요셉이 선택한 길이 무엇인가?
사람들에 대한 환멸과 염증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상황/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따라 살아가기로.
그는 선택하고 결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환관장의 시중을 들라"는 보디발의 말에.
이것을.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믿었던 주인 내외에게. 오해와 누명을 쓴 상태에서도.
그 마음을 삐뚤하게 가지지 않았고.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섬겼다.
그렇기에. 요셉은. 그들의 얼굴빛이 좋지 않자.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하며. 묻고. 관심을 가졌던 것이며.
그들의 꿈을 풀어주며. 그들의 근심을 덜어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 코가 석자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생각난다.
내 코가 석잔데. 누가 누굴 돌아보냐…
내게 주어진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내게 주어진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살필만한 여유가 없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주님은.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우리 주변을 살펴보길/돌아보길 원하시는 것 같다.
오늘 내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오늘 내 주변에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없는가 돌아보고.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 힘겹고. 녹녹치 않아도.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
그것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주의 백성들의 길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요셉의 모습이.
우리의 기도가 되고. 오늘 우리의 삶의 고백되길 소원한다.
형제자매를 향한. 우리의 관심과 섬김이.
"오지랖"이 아닌.
"진실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 마음 속 전부를 다 아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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