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화)
삿 6:25-32

"그리하여. 기드온은 종들 가운데서 열 명을 데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집안 사람들과.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일을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야 하였다(27절)"

기드온을 사사로 부른 다음.
주님이 그에게 제일 처음 명령한 것은. "바알"과 싸우라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영내에. 그것도 아버지의 집에. 바알 제단/아세라 상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드온이 우상을 제하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섬기기를 바랐다.

왜냐면.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기" 때문에.
절대자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기드온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
바알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둘째 수소를 번제로 드린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기드온이 이 일을. 낮이 아니라. 밤에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 이유를.
"기드온이 사람들을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볼 때는. 감히 이 일을 할 엄두가 안 났기 때문에.
한 밤 중에. 아무도 몰래. 이 일을 행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드온의 행동은.
사사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미심쩍고.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면. 당당하게/용감하게 가서 싸울 것이지.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몰래 이 일을 할 것이 뭐란 말인가.
게다가. 다음날 사람들이. "누가 이 짓을 한 거지? 누가 이 짓을 한 거야?"라고 물을 때.
왜 기드온은 "내가 그랬다"고. 당당히 나서지 못하는 걸까?

그런 측면에서. 기드온의 모습은. 전형적인 영웅/강한 용사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겁 많고. 두려움 많은. 소 시민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게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기드온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기드온을 바라보며. 책망하거나 꾸짖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런 기드온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새끼. 잘 했다"며 칭찬하시며.
기드온이 처한 어려움과 위기 상황 속에서.
주님이 바리케이드 치시며. 그를 커버하는 것 같다.

실제로.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하는 행동이 그런 것 아닌가.
아들이 이 일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요아스가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말리고. 기드온을 커버친 이유가 무엇인가?

기드온이. 단지 자기 아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드온의 행동이. 죽어 있던/잠들어 있던. 자기 마음/양심을 깨웠기 때문이다.
진작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내가 하지 않고. 머뭇머뭇 거리고 있을 때.
아들 기드온이 이 일을 대신해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아스는. 기드온을 대신해서. 마을 사람들과 싸우며 그를 항변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따르며.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살아가던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가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다며.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종용하고/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드온의 행동은.
결코 얍삽하거나. 비겁하다고. 평가 절하 되어선 안 될 것이다.
기드온은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고.
주님은. 그것을 받으시며. 기드온의 모습을. 어여쁘다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주님도. 나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실제로. 지난 며칠 동안.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침체에 빠졌던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게. 정말 마음을 다해서 기쁨으로 살아가기 보다.
그냥 할 수 없이/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묵상하고. 그분을 기뻐하기 보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쓴 마음을 쏟아낼 때가 더 많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바라보기 보다는.
오늘 내 처지와 상황을 바라보며. 절망하며 탄식할 때가 더 많았다.

근데. 그런 나에게. 오늘 주님이 이렇게 말하시는 것 같다.

"큰 게 아니여도 돼. 작은 것부터 하면 돼.
이 일을 꼭 낮에 할 필요도 없어.
사람들이 무섭고. 두려우면. 잠시 쉬었다가. 낮이 아니라 밤에 해도 돼.

내가 언제. 지금 당장. 이 일을 다 하라고 했니?
내가 언제. 너에게 큰 거를 바랐니?

난 니가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그냥 니가 있는 자리에서. 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좋겠어.
우리가 어찌.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고.
우리가. 어찌 '모든' 일들을. 다 잘 할 수 있겠니?
그건 과한 욕심이고. 그건 과한 생각/부담감인 것 같아.

오히려. 니가 있는 자리에서. 니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붙게 될 거야.
요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아무도 너의 마음을 몰라주고.
이 일이 너에게 서운하고. 원망스럽게 느껴질지 몰라도.
언젠가. 너의 마음을 알아주고. 사람들도 네 마음을 헤아리게 될 거야.

그러니. 큰 걸 바라지 말고. 작은 거라도 하면 좋겠다.
한 번에 모든 걸 다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에. 조금씩 조금씩. 해 보면 좋겠다.
난 너의 걸음을 응원하고. 난 오늘도 너를 지켜보며. 너와 함께 있단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내 모습이.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과 같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어 보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철퍼덕 주저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아이를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신다.
"넌 왜 그것도 못 하냐?"고. 냉정하게. 무관심하게. 시크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며. "조금만 힘내라!"며 응원하고. 또 응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가며.
주님 안에서. 다시금 힘을 내고 용기를 내어본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이.
오늘 나의 고백이 되고. 오늘 나의 기도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feat. 항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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