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1-9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우리 주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고 당신을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주께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당신의 말씀을 어기는 자들에게.
3대. 4대에 걸쳐 벌을 내리겠다고 하시지만.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겐.
1천대에 걸쳐. 은혜를 베푸겠다고 하신다(출 20:5-6).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위해서.
의인 10명이 되기까지. 계속 간구하고. 중보하였던 것처럼.
호세아가. 고멜을 받아들이고. 계속 용납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과 인내를 멈추지 않으셨다.
그렇기에. 요나는. 그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켜. 이와 같이 말한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오늘 본문에 기록된. 주님의 비유 또한 그러하다.
실제로. 주께서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 나무를 하나 심었는데.
이 나무가 아무리 기다려도. 열매를 맺지를 않는다.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자라기까지. 몇 년을 기다렸고.
그리고. 열매를 맺어야 할 때부터. 지금까지 3년이나 또 기다려왔는데.
이 나무는 지금까지 열매를 맺은 적도 없고. 열매를 맺을 낌새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인이 말하기를. "이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말한다.
이 나무 때문에. 땅만 버리게 생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나무를 베어 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었으면. 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이 나무를 심은 것이. 후회되고. 아쉬움/미련이 남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말하였다.
내가 비록 이 나무를 심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 나무에게. 수고하고 공을 들인 것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이 나무를 베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출발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이에. 종들이 와서. 그 나무를 찍어버리려 할 때에.
포도원지기가 와서 이렇게 말한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그 동안. 둘레를 파고. 거름을 줄 테니.
한 해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포도원 지기는. 그간 최선을 다해. 이 나무를 지키고 돌봤지만.
쉽게/쉽사리 이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한 번만! 딱 한 번만 은혜를 구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 생각에는. 주인이 포도원 지기의 청을 따라. 1년 더 기다려 주었을 것 같다.
그 나무만 생각할 때는. 화가 나고. 짜증이 나지만.
포도원지기를 생각할 때는. 내가 그의 청을 무시하고. 업신여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를 봐서. 그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포도원지기를 생각해서라도. 그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우리를 위해. 계속해서 중보하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사.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에수 그리스도.
오늘도 지금 우리 안에 계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성령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힘이 되고. 은혜가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주께서.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까.
나는. 매번 흔들리고 넘어지지만.
주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를 기다려오시고. 또 용납해 주셨다.
당신의 말씀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사랑을 경험하고. 만족하게 하셨다.
그래서. 오늘 내가.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사랑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사랑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내게 필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분께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주께 돌이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며.
주의 뜻을 따라. 그 사랑을 전하며. 그 사랑을 알리는 것이다.
주께서. 나를 향한 당신의 사랑과 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나도 형제자매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며. 용납하며.
인간의 어리석음과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며. 끝까지 그들을 품는 것이.
오늘 내게 주어진 사랑의 길이며. 부르심의 길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주께서. 사랑이 없는 자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면 좋겠고.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넓은 사랑을. 늘 경험하고 깨달았으면 좋겠고.
그렇게 나의 삶이. 형제자매를 향한 판단과 비난의 눈초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내 마음이 물들고. 그분의 사랑 가운데 깊이 잠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주께서. 사랑받을 수 없는 자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주심으로.
우리가 사랑 받을만한 자격/존재가 된 것처럼.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 당신의 자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우리에게 향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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