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0:1-8

예수께서 성전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을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대체.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어디 한번 말해 보십시오."
그들은 눈에 쌍심지를 키고. 이렇게 말하였고.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은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행동이. 너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전을 뒤엎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과 함께. 꽁냥꽁냥 거리면서 말씀을 나누는 모습이.
그들 눈에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가서. 따지듯이 이렇게 물었다.
그들에게. 예수의 말은. <하나도> 기쁜 소식이 아니었고.
그냥. 못마땅한 말/일 뿐이었다.
어떻게든 예수를 제거하고. 어떻게든 예수를 내치고 싶은 마음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예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 와서. 주의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고 있었고.
그들은 그 말씀을 따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톺아보길 원하였다.

때로는. 주의 말씀이. 내 폐부를 찌르고. 내 삶을 건드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 말씀을. 거부하고. 그 말씀을 내치진 않았다.
주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달고.
그 말씀이. 내 영혼을 위한 생명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오늘 우리는. 주의 말씀 앞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그 말씀이 내 귀에 즐겁고. 유익하면.
그냥 받아들이고.
내 마음에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내치고. 그것을 거절하는가?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고 말하는데.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단지 위로받고. 충족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주의 말씀 앞에. <정말 기쁨으로> 반응하며.
그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길 원하는가?

나는 오늘 우리 공동체가.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처럼. 주의 말씀 앞에 취사 선택하고.
내 마음대로 주의 말씀을 선별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정말 주의 말씀 앞에. <기쁨으로> 반응하고.
<기쁨으로> 수용하는 공동체 되면 좋겠다.

때로는 이 말씀이 내 삶을 건드리고. 불편하게 할 지라도.
그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겸손히 머무는 공동체 되면 좋겠고.
주의 말씀이 오늘 우리 안에 있는. 묵은 것들을 몰아내고.
새 성전을 짓고. 새 창조를 행하시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내가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예수. 하나님의 아들. 말씀으로 오신 주.
그 말씀을 믿는 자들마다. 새로운 마음 주시네.
예수. 하나님의 본체. 사랑으로 오신 주.
그 사랑이 날 찾아오셔서. 새로운 마음 주시네.

우리의 마음 돌이켜. 주의 말씀 앞에 나와.
모든 우상들 다 버리고. 하나님만 경배하네.
새로운 마음 주시고. 주님의 성령을 부으사.
우리 안에 굳은 마음. 제하여 주님의 마음 주소서.
그리하여 내 삶이.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며.
주의 영광. 주의 나라 드러나는 삶 되게 하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의 마음 주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의 마음 주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새 창조를 행하시며. 새로운 마음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드린다.

(feat. 새로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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