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7편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날.
그들은 소리쳐 탄식하며 울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이 황폐하였기 때문이다.
그날에. 사람들의 목소리도 잊혀지지 않는다.
에돔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무너져라! 무너져라! 기초까지 싹 무너져라!"고 조롱하였고.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길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조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강가에 앉아. 슬피 울며 탄식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노래나 한번 불러보라!"고 말이다.
"니들 노래 소리에 맞춰. 춤이나 한번 춰보라"고 말하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 수치와 수모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치와 수모를 겪을 수밖에…
그들에겐 아무런 힘과 능력도 없었고.
그들에겐. 아무런 무기도 군사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탄식하며. 소리쳐 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 나라가. 이와 같이 고통을 당하고. 슬퍼하고 있더라도.
주께서. 결국에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백성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갚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여 주시길 바라는 것이었고.
주께서 약속의 날에. 이스라엘을 돌려보내고.
자유와 해방을 선포해 주시길. 바라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었다.
마치. 시편 42편에 나오는. 시편 기자의 고백같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고 멸시할 때.
시편 기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를 찾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오늘 시편 기자도. 하나님 앞에 울부짖고. 그를 간절히 찾고 있다.
삼손의 기도도 그렇고.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모습도 그렇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갔을 때에.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조롱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다시 한번! 한번만 은혜를 주셔서.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래서 주님이. 삼손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에게 한번 더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삼손이 살아생전 죽였던 사람보다. 이날에 죽였던 사람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과 왕궁이 무너지면서.
그날에. 하나님을 비웃고 삼손을 조롱하던 사람들이.
일거에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모습도 그렇다.
십자가 위에서. 사람들이 주를 비웃고 조롱할 때.
주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소리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께서. 이 땅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조롱할 때.
주께서 이 땅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주님의 간구와 기도 덕분에. 죄사함을 얻고.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쏟아붓는 기도/탄식하는 기도"로. 우리가 당신 앞에 나오길 간절히 원하신다.
이 세상에서. 수치를 당하고. 조롱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주를 찾고. 간절히 주를 바라길 소망하시며.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감정과. 슬픔과 탄식을 쏟아내길 원하신다.
주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주님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고 바라길 소망하는 것이다.
절망과 탄식 속에.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않고.
그냥 '깨꼬닥' 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울부짖으며. 주를 찾고. 주를 기다리길.
간절히 소망하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의 기도를 따라. 또 삼손과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 앞에 간절히 울부짖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 찬양을 부른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 주를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어디 있느뇨.
내가 밤낮으로 눈물 흘리니. 주여 어찌합니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불안하는고.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네 얼굴을 도우시는. 네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네 하나님을. 너는 너의 하나님을 바라라"
오늘 하루.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물가에서.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간절히 부르짖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간절히 부르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시편 4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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