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23-28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보면.
주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고 말씀하신다.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으시고.
그들을 구속하신 날들을.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세상의 법과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기억하고 다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일은 저항이다>라고 말한다.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우리가 불안함과 두려움에 저항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것을 가르치며.
강요와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국의 법과 질서를 저항하라고 말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 안식일의 기본 정신/근본 정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타주의에 물드는 것을 금지하며.
과중한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지켜 돌아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의 근간 정신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법들이.
우리 스스로를 제단하고. 우리 스스로를 묶기 시작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
안식일에 하면 안되는 일들에 대한 율법 조항이. 무려 234개나 되었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굴레/사슬이 되었다.

안식일에. 주께서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는데.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를 억압하고. 스스로를 묶어놓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그게 편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그애야 우리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불안함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규칙과 규율을 많들어 놓는 것처럼.
불안하고 두려운 시대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고 자기 관할 아래 두려고 하는 것처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도. 그와 같은 모습/그와 같은 성격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떨까?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갖고 있을까?

처음에는. 예배를 거룩히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저런 지침과 규율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이것이 억압이 되고. 족쇄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다.

예배 때는.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되고.
예배 때는. 반바지를 입고. 예배를 드려서도 안 되고.
예배 때는. 슬리퍼를 신고 교회를 가서도 안 되고.
예배 때는. 빳빳한 돈으로. 새 돈으로 헌금을 드려야 하고.
예배 때는. 주일에 돈을 써서도 안 되고…
그래서 이런 저런 금기사항을. 교회에서 많이 만들어 놓았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이것이 사람들을 판단하고. 사람을 정죄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다.

율법이 안식일의 정신을 파기하게 된 것이다.
안식일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주목해야 하는데.
우리의 마음이. 사람들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이렇게 하는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하지 않냐"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공동체 안에.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사라지고.
우리 안에. 시시비비를 가리고. 잘잘못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를 살피는 일에 집중하면 좋으련만.
우리는 형제자매 앞에서. 그들에게 십자가 지우기를 좋아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며.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와 더불어 사는 것이.
즐겁고 기쁜 일이 아니라.
금욕주의와 율법주의의 삶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가는 길이. 그다지 즐겁지 않게 되었다.
분명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케 하시는 복음과. 해방의 복음을 선포해 주셨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를 억압하고. 형제자매를 구속하고. 그를 억누르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다시금. 자유케 하는 복음이 필요한 것 같다.

불안함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안에. 자유케 하며 담대케 하는 복음이 필요한 것 같고.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나. 물결을 통제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더 깊이 뿌리내리고. 진리에 천착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눈에 보이는 파도와. 흔들리는 나무 가지를 보고. 불안해 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치하신다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고.
눈에 보이는 외연과 껍데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본질과. 내연을 더욱 살피는 일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가. 시대의 정신과 풍조를 따라 살아가지 않으며.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신과.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율법 조항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 당신의 자비의 마음>을.
오늘 우리 가운데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율법 조항과 조문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율법의 정신과 근간을 흔들어 놓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본을 따라.
자유케 하며. 구원케 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와 동행하는 것이.
어렵고. 재미없고. 고단하고. 벅찬 일이 아니라.
그것이 즐겁고. 기쁘고. 유쾌하고. 가슴 뛰는 일임을.
기억하고 누리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에 넘쳐나기를.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기쁨. 하나님의 기쁨이. 당신의 삶에 넘쳐나기를.
기쁨 하나님의 기쁨이. 당신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소망. 하나님의 소망이. 당신의 삶에 넘쳐나기를.
소망. 하나님의 소망이. 당신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 주님의 평강과. 우리 주님의 기쁨과.
우리 주님의 감사와. 우리 주님의 소망이.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온전히 자유케 흘러 넘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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