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14-29 (1)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신 다음.
어떤 사람이 예수를 찾아왔다.
"자기 아들이 병에 걸려/귀신에 들려. 고생하고 있으니. 이 아들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그 아이를. 자기가 직접 고쳐주겠다고 하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지 않으셨던가.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여 보내실 때. 그들에게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고.
귀신을 내어쫓는 권능을 주셨고.
이 일로 인해. 제자들이 직접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경험하였으니.
그들 입장에선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계시지 않는 틈을 타서.
사람들을 고쳐주고. 그들을 낫게 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오히려 상태가 심각해지고. 악화되었다.
사람들이 와서. 그 모습을 지켜보니. 당황하기 시작하였고.
하루가 지나도 예수님이 오지 않자. 그들은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한단 말인가?"
그때 우리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시는데.
주님이 그의 병을 낫게하시고 그를 고쳐 주신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예수님. 왜 우리들은 귀신을 내어쫓지 못한 겁니까?
왜 우리는 안 되고. 예수님은 되는 겁니까?"
이에 예수님이.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예수님을 공생애 사역을 하는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그분의 능력을 따라 살고자 하였지만.
제자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따라 살고자 하였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쫓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제자들은 자기가 경험한.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지혜를 의지하곤 하였다.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께 기쁨을 드리기 원했지만.
제자들은 이 일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려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은. 교만한 마음으로/우쭐한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면.
예수님은 그들을 향한 긍휼함으로/불쌍한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전에는 귀신을 내어쫓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에는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지체들을 불쌍히 여김으로/긍휼히 여김으로 이 길을 걸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제자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다가.
큰 코를 닥치고. 큰 화를 입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순수함/첫 마음을 지켜가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 같고.
자신의 생각과 관습과 경험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무릎 꿇음이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다가는.
큰 코를 다치고. 화를 입게 되기 때문이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낯추고. 겸손히 무릎 꿇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분의 능력을 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능력과.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임을.
겸손히 고백하고. 또 증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며. 복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읽는데.
삼손의 이야기가 함께 생각나는 것 같다.
삼손이 자신의 힘과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다가.
큰 화를 입고. 큰 코를 다쳤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또 사람들 앞에서. 조롱감이 되고. 놀림감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또 정직하게 쓰임 받을 것인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타락한 삼손처럼. 변질된 선지자처럼.
첫 마음을 잃어버린 제자들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고.
하나님 앞에 순전함과 진실함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평생을 살아가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우쭐되거나 교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임을.
겸손히 고백하고. 겸손히 인정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며.
오늘 우리의 굳음 마음을. 주께서 깨뜨려 주시고. 부드럽게 해 주시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고백해야 하며.
주께서 오늘 우리의 삶의.
주관자 되시며 통치자 되심을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떨기나무/불타는 떨기나무>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쭉정이/속 빈 강정>처럼. 흩날리고 요란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주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그런 귀한 공동체 되고. 그런 귀한 주의 백성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은혜라네.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 은혜. 은혜라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은혜라네.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 은혜. 은혜라네.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받지 않은 것 하나도 없으니.
오직 주님의 은혜라.
이 은혜를 깨달음으도. 모두 주님께 있으니.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 이 모든 것이 은혜라네.
이 모든 것이 주의 은혜. 은혜. 은혜라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의 은혜를 힘입고. 주의 은혜를 따라 살아가며.
주의 은혜를 전하고. 주의 은혜를 귀히 선포하는.
그런 복된 공동체. 그런 겸손한 주의 백성되길 간절히 사모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은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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