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24:23-34
호통 판사. '천종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비행 청소년의 교정과 지도를 위해.
단호하게 판결을 내리고.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
사랑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냉혈한 인간이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이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들이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죄의 무거움'을 깨닫게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과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상하관계(윗사람과 아랫 사람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정관계 안에서도. 심지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도.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 안전한 공동체의 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지 '아무 말 대잔치/좋은 말 대잔치'를 벌일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야 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방향을 잃어버린 친구를 바로잡아 주며.
'사랑의 말씀으로' 지쳐 쓰러진 친구를 일으켜주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격려/사랑의 권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안에. 서로를 향한. 진정한 권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절대 진리는 없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결과이기도 하며.
'권위에 도전/반박하는' 저항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직언을 삼가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팩트 폭행'이라 말하였다.
'뼈를 때리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폭행'이라는 말을 붙여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꼰대'의 이미지를 씌워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건내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대화는 단절되고.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귀에 담는다.
나한테 껄끄럽지 않은 사람. 불편하지 않은 사람만 곁에 두려한다.
그렇게 편이 나뉘고. 우리는 각자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병들어 가는지도 모른채 말이다...
그렇기에. 잠언 기자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바른 말을 해주는 것이. 참된 우정입니다.
악한 사람/길을 벗어난 사람/진리를 떠나는 사람에게.
'당신이 옳다'는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상대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상대를 죽이는 길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아줘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사람/길을 벗어난 사람/진리를 떠나는 사람에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도리어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당장에는. 그 사람이. 이 말을 싫어하고. 외면하겠지만.
결국엔. 이 말이. 그 사람을 살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니.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십시오.
사랑과 선행을 서로 격려하며.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자 하십시오.
이것이 생명의 길입니다(잠 24:24-26)"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그러하길 기도한다.
워낙에. 개인주의가 심화되고.
'나와 너의 다름'이 '옳음'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가르치고. 전할 것인가.
바라기는. 우리가 사랑의 권면을 잊지 않길 원한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 진리 안에서. 생명을 구하길 소원한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삶/참된 삶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말씀을 전하고. 생명을 전하러 가는 길에.
주님의 진리가 나에게 임하길 기도한다.
사람을 살리는 사역. 그것이 오늘 우리가 걸어갈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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