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6:5-15
주께서 떠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은 집단 멘붕에 빠졌다.
"어디로? 대체 왜?"
그렇기에. 제자들은 번갈아 가며. 이렇게 말한다.
* 베드로 - 주님 가는 곳에 저도 따라갈래요.
주님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어요(요 13:37)
* 도마 -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어요(요 14:5)
* 빌립 -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세요(요 14:8)
멘붕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향해.
주께서 긴 설교/강화를 이어가시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도리어. 오늘 본문 6절은. 제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 있구나…"
하지만 우리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얘들아. 내가 떠나는 것이. 지금 당장은 너희에게 슬프고 괴롭겠지만.
내가 떠나는 것이. 분명 너희에게 유익할 것이다(7절)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며.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의 잘못을 깨우칠 것이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다(8, 13절).
내가 고아와 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I am with you. 나는 너의 함께 있으며.
I am in you. 나는 네 안에 있느니라(요 14:18-20).
결국.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잃어버린다는 슬픔에 주목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이것이.
상실이 아니라. 더 큰 기쁨을 얻는 길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제자들이. 예수님의 그늘 아래에서. 그 껍질 안에서만 살아왔다면.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당당히 홀로서야 할 때이며.
그동안은 누군가가 결정하고. 책임지고. 대신 무언가를 해주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고. 홀로 서야 할 때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물론.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1)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의 마음 속에 이미 살아있고.
2) 우리 주께서 어떻게 말씀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대하셨는지.
제자들이 자신들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고.
3) 살아계신 주님이. 영원히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신의 몸으로는 우리 곁을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리의 영으로. 영원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말씀으로/세미한 음성으로. 우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가르치시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며.
당신을 기다리고. 당신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걸음마를 처음 배울 때만 하더라도.
우리에겐 보호자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스스로 독립해가야 한다.
여전히 부모님의 품 안에서. 어린 아이처럼 지낼 수만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부모님 곁을 떠났다고 해서. 당신이 우리 곁을 영영 떠난 것은 아니다.
부모님의 임종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변함이 없다.
육신의 몸으로는 당신이 떠난 것은 맞지만.
당신의 가르침과 삶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사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캠퍼스를 맡고.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한 지방회 대표간사를 맡을 때만 하더라도.
적잖은 부담과 긴장이 되었다.
날 두고 떠나는 선배들의 바지 가랑이라도 붙잡고.
"나 어떡해" 하며. 엉엉 울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마치 오늘 본문에 기록된 제자들의 모습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난 시간/경험을 통해 분명히 배운 것이 있다.
선배들은 떠났지만.
선배들의 삶과 가르침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은 선배들의 품 속에서. 안전하게/친절히 배우고 자라왔다면.
이제는 홀로 서며. 스스로 결정하고 배워가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다.
어찌보면. 냉혹하고. 두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되돌아보면. 이 시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직접 배우고 자라왔던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잘 낫기 때문이 아니다.
내 안에 살아서 일하시는. 주님의 역사/은혜 때문이며.
주께서. 우리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가르치시며.
주께서. 우리를 안전한 포구로 인도해 오셨기 때문이다.
때로는 실수 투성이에. 온갖 똥을 싸질러 놓고 다녀도.
주께서 아무 탈 없도록. 뒤치다꺼리를 너무 잘 해주셨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손을 붙들고.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소원한다.
육신의 눈으로는 당신이 보이지 않고. 나 홀로 있는 것처럼 느껴질 지라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숨쉬며. 우리 가운데 친밀히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을 더해 주시길 소원하며.
주와 함께. 기쁨으로 이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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