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9:11-21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주님에 관해 각기 다른 설명/이름을 붙이고 있다.

1) 그의 이름은. '충신(신실하신 분)'과 '진실(참되신 분)'이며.
2) 그는 의로 이 세상을 심판하고. 싸우시는 분이시며.
3)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4)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칼이 나오시며.
5) 그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만왕의 왕/만유의 주라고.
사도 요한은 고백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여러 이름이. 그의 몸에 적혀 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지식에 대한 유한함이다.

그는 분명. 말씀으로 이 땅을 다스리시며.
그는 누구보다 선한 열심으로. 열정으로. 당신의 일을 행하시며.
그는 누구보다 이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만.

우리가 어찌 그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있으며.
우리가 어찌. 그의 모습/성품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만큼. 깨달을 뿐이며.
우리는. 그가 가르쳐주시는 만큼. 알 뿐이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낙심하고. 시험에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내가 이해되고. 이해되지 않고와 상관없이.
우리 주님은.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유일한 왕이시며.
그는. 오늘도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며.
당신의 선한 뜻을. 이 땅 가운데 보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충신'과 '진실'로. 이 땅을 살아간다.

'참 사랑은 그 어디에'라는 책에 나오는 글처럼.
주님이. 우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셨건만.

우리가 어찌. 주님을 향해.
'만약에(if).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신다면 당신을 믿겠습니다'
라고 의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찌. 주님을 향해.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해줬기 때문에(because of).
나도 그 사랑에 대한 보은으로. 당신을 믿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그 주님 앞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다 용납할 수 없을 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주를 향한 '충신과 진실'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갈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충신과 진실'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성품이.
오늘 우리의 삶에도. 아름답게 열매 맺길 소원한다.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이. 힘겹고 버거울 지라도.
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충신과 진실'로. 주님을 바라며.
주님 나라를 갈망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와 믿음을 허락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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