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9:18-29

우리는. 참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얘기'는 잘 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참 잘하고.
누군가의 약점과 허물을 들춰내기도 참 좋아한다.
사람이. 안주 거리도 아니건만. 계속 씹고 씹고. 또 씹어대고.
늘상 같은 주제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대화를 마치고 나면. 마음이 참 불편해 진다.
"내가 없는 자리에선.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나눌지?" 그게 불안하고.
"내가 저 사람을 심판하고.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정직하게 되물어 보게 된다.

주님은. 우리의 허물과 약함을 감추시고. 덮어주시기 바쁘셨는데.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함을 드러내길 바라는 걸까?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함을 드러내길 좋아하면서.
나의 약점과 허물이 드러나면. 불같이 화를 내는 걸까?

정말. 내로남불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자기에겐 무한히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겐 무한히 엄격한 것이.
우리 인간의 이중적이고. 파렴치한 모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함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반면 교사가 되는 것 같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누워 계실 때.
그가 옷을 벗고. 벌거 벗은 채로 누워 계실 때.
함은. 그 사실을. 꼭 자기 형제들에게 가서 알려야 했을까?"

"함이.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했을까.
아니면. 그 이야기 속에. 과장과 왜곡이 있었을까?"

"함이. 아버지 노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안타까움과 긍휼의 마음으로 이야기 했을까.
아니면. 조롱과 비아냥거림으로 말하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자일 것 같다.

노아는. 아버지 노아의 허물과 잘못을 보고.
'옳다구니. 기회다' 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 같고.
아버지의 모습을 희화화 하고. 비아냥 거리며.
있는 그대로 아버지의 모습을 전하기 보다는.
왜곡하고. 축소하고. 과장해서 그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왜? 있는 그대로 전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msg를 치고. 과장을 더해야. 그래야 재밌지.
있는 그대로 전할 거면. 왜 굳이 이 난리를 치겠는가.

그렇게 함은. 아버지 노아를 완전히 짓밟았고.
노아의 인격과 존재는.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훼손되게 되었다.

그렇기에. 노아는.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준. 셈과 야벳에겐 복의 소식을 전하지만.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들춰낸. 함과 그의 아들들에겐.
엄중한 심판과 책망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모습을 돌아본다.

나는. 또 우리 공동체는 어떠할까?
나는. 우리 주님처럼. 누군가의 약함과 허물을 감춰주고. 덮어주길 좋아하는가.
아니면. 사단처럼. 누군가의 잘못을 드러내고. 참소하길 좋아하는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모습을 닮아. 그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에게 있길 소원하며.
오늘 우리 공동체가. 서로에게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 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에게.
그런 사랑과 은혜 베풀어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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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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