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7:1-14

'이름'은. 그 사람의 지난 삶을 담보한다.
이 사람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이 사람의 성격과 됨됨이는 어떠한지.
이름 가운데. 그 사람의 삶이. 겹겹이 쌓여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름을 바꾼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사람의 지난 삶을 잊어버리고/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결연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새롭게 바꾸신다.
아브람의 지난 날의 잘못을 잊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이다.

- 네가 기근의 때에.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던 일.
- 네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던 일.
- 네가 롯과 다투고 갈등을 겪었던 일.
- 네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과 관계를 맺었던 일.
- 네가 아내와 크게 다투고. 하갈을 학대한 것.
- 지난 13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들.

이 모든 일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바꾸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나에게 순종하며 흠없이 살아라.
그동안 네가 실수하고 잘못한 일들이 참 많지만.
내가 그것을 기억하지 않겠다.
내가 그것을 잊어버리겠다.
그러니.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나에게 순종하며. 부디 흠없이 살아라."

이에 대한 약속의 징표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것이다.

그리고. 할례를 명하신다.
이것은. 남자 성기의 포피를 잘라 버리는 것으로.
과거의 삶을 단전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가족 일가/모든 사람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소원하며.
할례를 행할 때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를.
상기하고. 기억하기 바랐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날은. 참회와 은혜의 날이었다.

아브람이 지난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날이었고.
자신의 잘못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주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심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지난 13년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던 주님이.
오늘 나를 찾아와.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감격이었고.

지난 13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고.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막 살아가던 내게.
주께서 나를 찾아와. 내게 먼저 말씀하시고. 내게 먼저 손을 내미시니.
그 자체가 눈물이고. 그 자체가 은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브람은. 바로 그날. 주의 말씀을 따라. 할례를 행한다.
주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그날로'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며.
'그날로'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단/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 같다.

"내가 너에게. 새 이름을 주었건만.
너는 그 이름의 뜻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흠없이 살고 있느냐?"

"너는. 마음의 할례를 행하며. 지나온 일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느냐?"


어찌보면. 우리는. 매번 넘어지고. 쓰러지고. 실수하기에.
주님 앞에. 얼굴을 들고 나아가기가 참 민망한 것 같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실 때.
우리는. 얼굴을 푹 숙이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지나온 내 삶을. 내가 너무 잘 알기에.
자신있게 답을 하기도 민망하고.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조차도 민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다시 손을 내미신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조반을 먹이시며.
따뜻하게 그를 바라보고. 그를 품어주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주께서 다정하게 손을 내미시며.
오늘 우리를 맞아주고 반겨주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의 은혜를 따라 기도하기 원한다.

내 이름을 아시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소원하며.
내 이름을 아시는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시며.
마음의 할례를 행해 주시길 기도한다.

그래서. 주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 하루. 우리가 주님 앞에서. 온전히. 흠없이 살아가길 소원하며.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한없는 사랑과 은혜 베풀어주시길. 기도한다.

주님은 내 이름을 아시고.
주님은 내 생각도 아시고.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모두 들어주신다.


(feat. 내 이름 아시죠)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2.15(화) 창 18:1-15  (0) 2022.02.15
2022.02.12(토) 창 17:15-27  (0) 2022.02.12
2022.02.10(목) 창 16:1-16  (0) 2022.02.10
2022.02.09(수) 창 15:7-21  (0) 2022.02.09
2022.02.08(화) 창 15:1-6  (0) 2022.02.08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