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5:7-21
때때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를 봐도 그렇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네 자손을. 저 바다의 모래처럼. 저 하늘의 별처럼. 많이 주겠다"고 하셨기에.
아브람은. 이것에 대해.
"제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을 뿐이다.
근데.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심상치 않다.
실제로 13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네 자손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 살이를 할 게 될 거야. 종 살이를 하게 될 거야.
네 자손이 거기서. 400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고.
4대 째가 되어서. 그제서야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하지만. 내가 분명 이 땅을 너희에게 줄 거야.
내가 그것은 약속할 수 있어.
그때는 네가 이미 죽고 없어서. 너는 그 약속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면 좋겠다.
내가 그건 약속할게."
아브람 입장에선. 이 얘기를 듣고. 마음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냥 궁금해서.
그냥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싶었을 뿐인데.
이분이 생각치도 못한 이야기를 하시니.
아브람 입장에선.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그것도. 장미빛 미래/긍정적인 전망이 아니라.
네 자손이. 종살이를 하고. 400년 동안 나그네/떠돌이 생활을 할 거라고 하시니.
아브람 입장에선. 적잖게 당혹스러운 것이다.
그렇기에. 아브람 입장에선.
하나님의 약속/이 계획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섣불리 하나님의 약속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섣불리 아멘으로 응답하기도 어려운.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오늘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우리 인생을 보면.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지만.
우리는 그 일이 언제 일어날 지 알지 못하고.
때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주님의 생각/계획이.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선하신 주님을 믿고 살아가지만.
때때로 흔들리며. 비틀거리기도 한다.
주님의 약속/말씀을. 우리가 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도 혼란스러워 하며. 허덕이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한다.
주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를 끄지 않으시길 기도한다.
오늘 우리 영혼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 앞에.
겸손히 엎드려 순종하길 소원하며.
선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선한 열심으로.
오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품어주시길 기도한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 인해.
낙심하고 시험에 드는 사람이 없길 소원하며.
주께서 우리 가운데 하실 일을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그런 은혜와 소원 베풀어주시길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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