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8:1-15
아브라함은. 참 오지랖이 넓은 것 같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것을. 왜 혼자 이렇게 나선단 말인가.
실제로 오늘 본문을 봐도 그렇다.
세명의 무리가.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집에 앉아서.
"무슨 일이요? 뭐 필요한 거 있소? 시원한 물이라도 한잔 드릴까요?"라고 해도 될 걸.
"왜 달려가서. 그들을 맞이하고. 엎드려 절한단" 말인가?
손님은 아무런 말이 없는데.
자기 혼자 야단법석(?)을 떠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참 낯설게 느껴진다.
아브라함의 오지랖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오지랖은. 계속 이어진다.
아브라함이. 허겁지겁 뛰어오더니. 사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보. 손님이 왔소. 빵을 좀 준비해 주시오"
사라 입장에서는. 그런 아브라함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뭐. 하루 이틀이여야지.
평소에도 늘 그렇게 나대며 살아온. 아브라함이었기에.
사라도 "녜~녜~녜"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근데. 이 양반이 선을 넘는 것 같다.
3인분만 준비해도 될 것을. 20리터(20kg) 밀가루를 뜯으라고 말한다.
그것도. 최상급/고운 밀가루를 뜯어서. 빨리/최상급의 음식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고. 사라 입장에서는. 너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이 양반이 미쳤나? 누구 살림 거들낼 생각인가?"
하지만. 아브라함의 행진은. 도무지 멈출 생각을 보이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그길로 바로 하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송아지 한 마리 잡으세.
그것도. 좋은 놈으로. 기름진 놈으로다가 한 마리 잡으세.
그걸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게."
하인 입장에서도. 이 일이 너무 낯설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오늘 무슨 날인가? 오늘 잔치를 벌리려나?"
하지만. 물어볼 수가 없다.
아브라함은 이미.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사라에게. 빵/떡을 준비하라고 부탁하고.
하인에게 송아지를 잡아서 요리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자기 자신은. 엉긴 젖(치즈)와 우유를 준비하러. 잽싸게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앉은 사람은 3명인데. 정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엄청난 식탁이 준비되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오지랖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들이 식사하는 곁에 서서. 아브라함은 계속 서서 시중을 들었다.
뭐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뭐 더 부족한 것은 없는지 계속 물어보며.
그들의 필요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며. 이 모습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이 본문을 오랫동안 봐 왔기에.
아브라함의 환대와 섬김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들었다.
"아니.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부탁한 것이 아닌데.
아브라함이 굳이 먼저 길을 나서야 하나?"
"아니. 3명의 손님이 찾아왔을 뿐인데. 그냥 적당히 하지.
이렇까지 손님을 맞이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귀인/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랬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니. 아브라함의 섬김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가.
귀인이라서/특별한 사람이라서 그 사람에게 잘 해주면…
그래서 그 사람으로부터. 뭐라도 콩고물/뭐라도 받을 심산으로 그랬다면…
이것은. 환대가 아니라 접대가 아닌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가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섬김이. 몸에 베였다는 것이다.
한낮에 더위에 지쳐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1절).
그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아브라함의 마음에 긍휼/사랑의 마음이 불붙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말 마음 다해. 그들을 섬기고 또 섬기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아브라함에겐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묵상하다가.
지난 1월 가족 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한 목사님이 생각났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났던 목사님.
생전 한번도 알지 못했던 분인데.
이분이 처음 만나자 마자. 군고구마 한봉지를 건내 주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신다.
목사님께 괜한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서.
조심스레 사양하고 거절하고 싶었는데.
차를 가지고 나갈테니. 주차장에서 곧 만나자고 하신다.
주차장에 도착했더니. 쌀 한 포대를 건내 주시고.
아내를 위한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신다.
식당에 도착했더니. 우리를 위한 식사를 이미 준비해 놓으셨고.
자신은. 다른 약속이 있으시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생전 처음 겪는 일에.
나와 아내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그분은 아무렇지도 않으신듯. 자연스럽게 행동하셨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분과의 만남이 참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근데. 참 우연하게도.
오늘이 그 목사님의 생일이라고. 카톡이 친절히 알려준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아침. 말씀을 읽으며.
아브라함의 마음과. 그 목사님의 마음이.
자연스레 내 마음에 오버랩 되는 것 같다.
나는. 오늘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오늘 내게 주어진 만남 속에서.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하심과 당신의 섭리라면.
작은 만남 하나도. 소중히 여기고. 귀히 여기는 것이.
오늘 내게 필요한 것 같다.
계약 관계로. Give & Take 방식으로.
누군가를 접대하고.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기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를 마음다해 사랑하고.
그들을 존재로 환영하고. 축복하는. 그런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쉼과 안식을 주며. 기쁨을 주는.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은. 거룩한 낭비인 것처럼.
또 다른 말로. 사랑은. 거룩한 오지랖인 것 같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내 삶을.
거룩한 낭비와. 거룩한 오지랖의 길로 인도하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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