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8:16-33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가인 입장에선 아무도 몰래. 이 일을 행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몰래 아벨을 죽이고. 그를 땅에 묻었으니.
어찌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겠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딨냐?"고 물어보실 때.
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내가 무슨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까?"하며. 바락바락 대든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네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10-11절)"
이 얘기를 듣고. 가인이 얼마나 뜨끔한지 모른다.
"땅이 울부짖는다니. 땅이 그의 피를 마시고 울부짖는다니"
가인 입장에서는. 정말 아무도 몰래. 완전범죄를 하였다고 생각했건만.
땅이 울부짖고. 땅이 자신의 죄를 고발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죄를 실토한다.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그제서야 고백하는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니. 똑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20절 말씀을 보니.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말씀하시는데.
처음엔 이게 '사람'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뭐가 안 맞았다.
뭐가 안 맞냐면?
"주께서.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소돔땅을 심판하시는데.
그러면. 울부짖는 사람들은. 심판을 면하고 구원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현실은 어떠한가?
롯과 그의 가족말고도.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20절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소리일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오늘 본문과 가인의 살인 사건이 연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는 것처럼.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고 소리치고 있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를 이렇게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놓은 사람들을 고발하고.
이차적으로. 내게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고. 거들떠 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모두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러 내러오셨다.
죄를 묵인하고. 죄인을 버젓이 내버려두고.
도리어 악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을. 마치 자랑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주께서 진노의 칼을 빼드는 것이다.
근데. 이 모습이. 마치 오늘 이땅에서 벌어지는 모습과 같은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다가.
무고한 죄로 자신의 목숨을 달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전쟁과 기근과 핍박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며.
기후 위기와 경제적 양극화 문제는.
사회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더욱 심각해져 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울부짖고. 소리친다.
하지만. 듣는 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때로는 그 소리가 대답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소리치며.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도. 함께 소리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것이냐"고 소리치며.
"제발. 이제 그만. 무분별할 폭력과 악의 역사를. 이제는 멈추라"고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피조물이 이제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고 있으니.
그들이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롬 8:20-22)"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땅이 울부짖고. 피가 울부짖는 것처럼.
여러분도 함께. 울부지고. 기도해 주십시오.
이 땅의 탄식과 아픔을 바라보고.
제발 아무 것도 모른척 외면하지 말고.
함께 애통하며. 함께 탄식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함께 기도한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나의 백성이.
스스로 겸손해져서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떠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며. 그 땅을 다시 번영시켜 주겠다(대하 7:14)"고 하셨던 것처럼.
부디 주께서 이 땅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시길 간구한다.
오늘 하루. 우리가 그 주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온전한 예배자/온전한 기도자/온전한 중보자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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