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9:12-29
무협지를 보면. '천근추'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자신의 기를 몸 아랫쪽에 낮춰서. 무게 중심을 잡는 것으로서.
여러 사람이 그를 밀어도 꼼짝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1000근의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것을 가리켜.
우리는 '천근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천근추'의 기공을 펼치는 사람이 더러 나온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주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에게.
"Right Now. 지금 당장 이 성을 떠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얘기를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롯의 사윗감들은. 그가 농담한다(14절)"고 생각했고.
"롯도 그 사이에 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꾸물꾸물거리며 앉아 있다(16절)"
그러자. 하나님이 반강제로/억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을 끄집어 내신다.
이대로 있다가는. 롯과 그의 가족들까지 죽음을 면키 어려우므로.
주께서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분명 주께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롯의 아내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그 결과. 롯은 소금 기둥이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의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른다.
분명 주께서. 엄히/무겁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얘기를 그냥 "농담" 정도로 생각하고.
(롯의 사위였으니. '농담'으로 받아들였지.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롯을 '미친 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이 길을 떠나고.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밍기적거리며, 뒤를 돌아보는" 당신의 백성들을 보면서.
얼마나 속이 터지고 답답했을지. 차마 상상할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 롯과 그의 가족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다.
분명. 주님은 우리에게. 과거와 단절하고.
죄된 습관을 버리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옷을 입으라고 하였지만.
오늘 우리는 요지부동/천근추의 마법을 쓰고 있다.
얼마나 오랫동안 굳어 있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향해. 깊은 뿌리를 내고 있었는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좀처럼 길을 나서기 쉽지 않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겨우 겨우. 길을 나섰는데.
이번에는 앞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뒤를 돌아보며 곁눈질 하며. 길을 걸어간다.
지나온 세월이 못내 아쉽고. 그립기 때문이다.
이전의 날들이 계속 그리워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을 보고. 반듯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삐뚤빼뚤. '갈 之' 자를 그리며 길을 걸어간다.
나로서도 그렇다.
대표를 시작하며.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과 소명이 있지만.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해서. 뒤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여기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들때도 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때문에. 여기에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모습과.
롯과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뒤를 돌아보며. 아쉬움과 후회를 가지며.
온전히 앞을 보지 못하고. 온전히 내 마음을 쏟지 못하는 모습이.
그들과 별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이렇게 기도할 뿐이다.
"주님. 오늘 롯의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모습이. 문득 우리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지금 당장 길을 떠나고.
이전 일들을 돌아보지 말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웃기웃 거리며. 밍기적 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고.
과거로 돌아가고. 과거로 회기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이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주님. 그런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님. 그런 우리에게. 주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눅 9:62)"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
그 푯대를 향해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의 시선이 오직 주님께만 고정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힘과 은혜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 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을 붙들겠다고 하였던.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가 세상으로 돌아가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오직 우리가 돌아갈 곳은.
우리 주님. 여호와 한 분 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 베풀어 주시길 소원하며.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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