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22-32
오늘 본문은. 창세기에 기록된 유명한 본문 가운데 하나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씨름을 하였고.
주께서 그 야곱에게 복을 주시며.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야곱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며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근데. 오늘 따라.
24절에 기록된 "붙잡고"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실제로 24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야곱이)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말 일분 일초를 다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누군가. 뒤에서.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에게 씨름을 걸어오니.
이런 상황 속에서 야곱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나였다면. 정말 짜증이 났을 것 같다..
"아… 내가 지금 이럴 때 아닌데. 이거 뭐야?
지금 형 에서를 만나는 것만 해도. 신경 쓸 일 많은데.
이 놈하고도 싸워야 해?"
그런 측면에서. 야곱은.
이 사람과의 씨름이 별로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청객'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속전속결'로 이 일을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게. 이 사람을 대하는 야곱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근데.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의 이름 뜻이 무엇이었던가?
"뒤꿈치를 붙잡다"라는 뜻이지 않은가?
태어날 때. 그의 형 에서의 발 뒤꿈치를 붙잡고. 야곱이 태어났고.
장자권과 축복권을 두고도. 형 에서의 발 뒤꿈치를 붙잡았다.
야곱의 주특기는. '태클'이었고.
야곱의 취미는. '앞서 가는 사람 붙잡는 것'이었다.
그랬던 야곱에게. 누군가가 태클을 걸다니.
이것은. 정말 야곱 인생에. 획기적인 일/센세이션한 일이었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니. 그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태클을 걸고.
하나님이 야곱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야곱아. 급하지? 할 일 많지?
그전에 나랑 할 일이 하나 있다. 나랑 씨름하자.
야곱아. 지금 다른 데 신경 쓸 겨를 없고.
정말 모든 관심이. 형 에서에게만 몰려 있지?
그럼 나랑 할 일이 하나 있다. 나랑 씨름하자."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적인 싸움이다.
야곱의 관심이. 온통 에서에게 향해 있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나를 마주하고. 나를 대면하고. 나와 씨름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일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그렇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마주하고.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눈 앞에 주어진 일들 앞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늘 급한 일에 쫓기고. 늘 조급한 마음으로. 늘 다급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근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늘 급한 일에 쫓기는 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망각하는 것이기에.
오늘 우리의 초점이. 그분께로 재조명되고.
오늘 우리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재설정되기를.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이. 우리 인생에 의도적으로 태클을 걸어오실 때가 있다.
앞만 보며. 정신 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니가 지금 그거 할 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나랑 씨름하자!"고. 주께서 우리의 허리춤을 잡아 당기시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아침.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라는 책이. 문득 생각난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누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 당기냐?"며. 짜증내고. 싫증내며 오늘을 살아가는가?
아니면. "이것이 하나님의 태클/씨름인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돌이키며. 다시금 주님을 주목하는 인생을 살아가는가?
바라기는.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그것을. 달갑지 않은. 불청객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과 마주하는.
그런 우리가 되면 좋겠다.
(feat. 주가 일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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