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3:1-20
오늘 본문을 보며 드는. 첫번째 생각은.
"야곱이. 야곱했다"는 것이다.
1) 특별히 오늘 본문. 1절부터 5절까지를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2절에 재밌는 기록이 나온다.
"두 여종과 그에게서 난 아이들은.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에게서 난 아이들은. 뒤에 세우고.
라헬과 요셉은 맨 뒤에 세워 따라오게 하였다."
야곱은. 왜 이렇게 순서를 세운 것인가?
- 형 에서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서대로 세운 것인가?
- 주인공은 나중에 나오는 법이니까. 소중한 사람은 뒤에 소개하고 싶었던 것인가?
아니다.
자기가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부터. 순서대로 도열한 것이다.
에서가 자기를 치면. 뒤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도망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창 32:8).
다시 말해서. 앞 사람은. 총알받이였고.
뒷 사람은. 그 뒤에 숨어서.
어떻게든 자신의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야곱의 야비함과 속임수가. 여기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야곱은. 어쩔 수 없는. 야곱인 것이다.
2) 야곱이 야곱한 것은. 그 다음 장면에도 계속 기록된다.
특별히. 형 에서를 맞이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
"too much.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a. 형 에서에게 나아가며. 일곱번이나 절을 하며(3절)
b. 자신을 가리켜. 형님의 못난 아우라고 말한다(5절)
c. "내가 오는 길에 만난 가축 떼는 모두 웬 것이냐?"는 질문 앞에.
"형님께 은혜를 입고 싶어서. 내가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고(8절).
d.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하다고 말한다(10절).
방금 전까지. 바로 어젯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 야곱이.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형 에서에게 잘 보이고. 또 잘보이려 했던 것은 이해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야곱의 모습은. 과하고. 또 너무 과한 것 같다.
좀 많이 비겁하고. 초라해 보인다.
3) 야곱이 야곱한 것은. 그 다음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에서가 야곱에게. "우리 같이 살자. 우리 같이 길을 떠나자"라는 질문에.
야곱은. 형님의 속도에 맞춰 길을 떠나는 것은 무리라고 답을 한다.
"형님이 먼저 길을 가시면. 제가 천천히 '세일'로 가서. 형님을 뵙겠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형 에서와 헤어지고 난 다음에. 그가 찾은 곳이 어딘가?
'숙곳'으로 갔다.
거기서 살다가. '세겜'에 이르렀고.
거기서. 세겜의 아버지인 하몰의 아들에게. 밭을 사고.
거기서. 아예 터를 잡고. 거기서 아예 살았다.
"형님이 먼저 가시면. 제가 천천히 세일로 가서. 형님을 뵙겠다?"
이건 야곱의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야곱은 처음부터 형님과 함께 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에서가.
"나의 부하 몇 사람을 너에게 붙여주겠다"는 이야기에.
손사래를 치며 이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은.
"야곱이 야곱했던 이야기"로 가득하다.
주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고.
그에게 새 이름을 주셨지만.
그는. 예전의 습관과 본성을 따라. 옛사람의 모습으로 살았던 것이다.
근데. 그 모습이 누구의 모습과 비슷하냐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주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주께서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
주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주셨지만.
우리가 예전의 습관과 본성을 따라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야곱의 모습을 보며.
"얘는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정신 못차리는 거야?"라고.
손가락질하고.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오늘 야곱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가며.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주께서. 인간적인 생각과 속임수로 가득한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길.
입으로는 청산유수처럼 수많은 말을 쏟아내지만.
마음으로는. 삶으로는.
여전히 제 버릇 개 못주고 살아가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길.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
주께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삼아주셨던 것처럼.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참된 은혜와 평강 허락해 주시길 소원하며.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간다.
"주님.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feat. 내 주를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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